나이 먹고 영 별로일 줄 알았던 첫사랑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더니 그새 또 근사해진 느낌이랄까. 올해 82세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여전히 관객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한다. 2015년 '마션'을 제외하면 최근 몇년간 그가 만든 영화는 상당히 자주 실망스러웠지만, 오늘 개봉하는 '올 더 머니'를 보면 '그래도 리들리 스콧이구나' 싶어진다. '세상 모든 돈'이란 뜻의 제목부터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돈 돈 돈' 하지만, 돈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는다. 이 80대 노장은 여전히 날카롭고 정교하게 벼린 붓으로 난 치듯 우아하게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을 해부(解剖)한다.

억만장자 폴 게티의 며느리 게일은 아들을 납치한 괴한과 협상을 시도한다.

영화는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구두쇠 J 폴 게티(1892~1976)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게티는 스물세 살쯤에 아버지 도움을 받아 유전(油田)과 숨은 미술품을 사들여 막대한 부를 모은 인물이다. 영화는 게티의 손자(찰리 플러머)가 갑자기 유괴되면서 시작된다. 유괴범이 요구한 몸값은 1700만달러(약 186억원)이지만 게티는 유괴범에겐 단 한 푼도 내줄 수 없다고 한다.

돈을 지키려는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와 자식을 지키려는 며느리 게일(미셸 윌리엄스) 사이에서 영화는 줄곧 팽팽하다. 유괴라는 긴박한 상황은 결국 두 사람 세계관의 충돌로 이어진다.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게티 역할이 욕망 그 자체인 듯 연기한다. 깨물어 잇자국도 내지 못할 것처럼 쫀쫀한 이 할아버지가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줄리 앤드루스와 함께 '에델바이스'를 부르던 트랩 대령이었다니. 플러머가 두꺼운 성벽이라면 미셸 윌리엄스는 그 성벽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이다. 나이 먹어도 늘 어딘가 어린아이 같은 이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끈질기지만 부드럽게 속삭인다. 돈, 그것이 때로 인생을 뒤흔들지 몰라도 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