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사람과 원숭이를 대상으로 배기가스 유해 여부를 증명하는 실험을 한 사실이 드러나 독일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최근 ‘유럽 운송분야 환경보건연구그룹(EUGT)’의 내부 문서인 ‘2012~2015년 활동 보고서’에서 이들이 독일 아헨공대에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배출가스 유해실험을 실시했다고 독일 현지 언론과 BBC 등 외신이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폴크스바겐 AG 2019년형 모델 바퀴.

EUGT는 폴크스바겐, 다임러, BMW 등 독일 자동차업체들과 부품업체인 보쉬가 돈을 대 만든 단체다.

해당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이 실험은 건강하고 젊은 19명의 남성과 6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독일 서부 아헨에 있는 아헨공대연구소에서 한달 동안 한번에 2시간 동안 다양한 농도의 질소산화물(NOx)을 흡입하는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시간당 11달러를 지급했다. 실험의 목적은 독일 자동차의 디젤 가스가 인체에 유해한 정도가 낮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독일 자동차 업체들은 이 실험이 끝난 뒤 지난 2016년 디젤 가스의 오염 수준을 안전한 수준으로 절감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EUGT는 지난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디젤 엔진 가스를 발암물질로 분류한 결정에 반박하기 위해 해당 실험을 시행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14년 EUGT가 미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있는 민간 의학연구소인 러브레이스호흡기연구소(LRRI)에 의뢰해 폴크스바겐 비틀의 배출가스 실험에 원숭이를 동원한 동물실험을 했다고 전했다. 이 실험에서 원숭이들은 4시간 동안 밀폐된 방에 배출가스를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동물 실험에 이어 인체 실험까지 자행한 사실이 밝혀지자 독일 사회가 경악했다. 이어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원숭이나 인간을 두고 이러한 실험을 한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며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바바라 헨드릭스 독일 환경부 장관은 “해당 실험은 가증스럽다”며 “과학자들이 이 실험을 수행하는 데 동의한 것도 충격”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감독위원회 위원인 스테판 웨일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도 “터무니없고 혐오스럽다”며 “로비는 그러한 실험을 위한 변명이 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교의 크리스 칼스텐 박사는 “사람이나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인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이들로 대기오염 정도를 실험하는 것은 전혀 일반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그대로 공기를 들여마신 것과 같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독일 자동차 업체들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폴크스바겐은 이날 공식 성명을 통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실험이었고, 내부 조사를 통해 책임을 질 것”이라며 “연구에 대한 비판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실험은 폴크스바겐의 윤리적 표준과 모순되며 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2015년부터 자사의 일부 디젤 차종에 배기가스 방출량을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사전 심의 테스트에 통과한 후 ‘클린 디젤’이란 문구로 홍보해온 사실이 밝혀져 논란은 빚은 바 있다.

다임러는 “EUGT의 실험 방식은 우리의 가치와 윤리적 원칙에 위배된다. 해당 실험은 충격적”이라고 발표했다. 또 BMW는 “해당 실험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폴크스바겐 감독위원회는 해당 실험과 관련해 철저한 경위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