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이 요란한 겨울이다. 대기를 뒤덮은 혹독한 추위가 좀 가신다 싶으면 그 자리를 먼지가 차지한다. 덕분에 일기예보를 열심히 보고 있다. 밀린 일기를 쓰느라 신문 더미를 뒤지던 초등학생 시절 이후 처음이다. 연락이 닿는 열 명 중 서넛은 감기에 걸려 큰 고생을 치렀거나 치르는 중이라며, 감기 조심을 당부한다. 늘 건강한 어머니마저 이번 감기는 피하지 못하신 모양이다. 덕분에 걱정이 많았다.
감기란 것이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낮부터 으슬으슬하고 골치도 아파 덜컥 겁이 났다. 그 핑계로 평소보다 일찍 서점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왔다. 보일러 온도를 높여놓고, 담요를 둘러 덮었다. 그러고 나니 어쩐지 멀쩡해지는 것도 같고, 자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남은 시간 뭘 할까 궁리하게 된다. 여유로운 겨울밤이 참 오랜만이다. 서점을 시작하고선 주말도 없는 퇴근길은 늘 한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지기 일쑤. 오가며 지나는 밤에 어찌 계절이 있을까.
내친김에 겨울밤과 어울리는 시집을 찾다가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을 꺼낸다. 떠올릴 시인이야 많고 많지만, 겨울밤 하면 백석 아니겠는가. 그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나오는 구절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백석 시 곳곳에 등장하는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국수') 음식이 밤참처럼 탐날 것이고, 누군가는 그가 사용한 풍요로운 우리말이 별자리처럼 신비롭겠지만, 내게 백석의 시는 천일야화보다 깊고 아름다운 이야기 자체다. 금방 깜깜해지고 마는 어두운 겨울밤, 어쩐지 침침한 불빛 아래서 엄마가 소곤소곤 들려주던 까마득한 이야기가 백석의 시에는 있다. 100년 전 태어난 시인이 행과 연과 여백 속에 드러내고 숨긴 이야기를 100년 후를 살고 있는 내가 찾아낸다. 그것은 고스란히 내 이야기와 겹쳐져 공명한다.
오늘 밤은 '오리 망아지 토끼'라는 시를 유심히 본다.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간 지 오래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아버지와 함께 보낸 유년의 기억을 다룬다. 오리를 잡으러 가서, 함께 시장에 가서, 토끼를 잡으러 가서 있었던 세 토막의 이야기에 문득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이러저러한 기억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꼭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모닥불') 쪼이는 모닥불처럼 따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