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관계를 공식화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김소연 씨가 2018년 1월 25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올가을에 결혼한다. 양가 상견례는 마쳤다. 한국에서 내 여생의 반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서울과 독일 베를린·하노버를 오가며 반반씩 살 것 같다. "
게르하르트 슈뢰더(73) 전 독일 총리는 통역사 김소연(47)씨와 결혼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물여섯 살 차이다.

슈뢰더 전 총리와 김씨는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결혼이 내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며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결혼식 장소와 정확한 날짜는 추후 결정되면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2년여 전 한국에서 열린 국제경영자회의에서 처음 만났다. 김씨는 현재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경제개발공사 대표를 맡고 있으며 슈뢰더 전 총리의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슈뢰더 전 총리와 이혼 소송 중인 도리스 슈뢰더-쾹프가 페이스북을 통해 파경을 맞은 요인 중 하나로 꼽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졌다. 슈뢰더 전 총리와 김씨는 최근 독일 언론을 통해 연인 관계임을 인정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아내와는 2015년 3월부터 별거했는데 2016년 여름에 아내가 자신의 연인을 공개한 뒤 그해 9월에 법원에 이혼 및 별거 합의 계약서를 제출했다"며 "어떤 문제가 있어 이혼소송을 한 게 아니라 독일에서는 그것이 모든 이혼의 정상적인 절차"라고 밝혔다. "아내의 이혼 요구에 따라 절차를 밟은 것이고 별거 중에는 통역사 김소연씨를 알지도 못했으니 이혼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도리스 슈뢰더-콥프씨는 두 분의 연인관계에 대해 뭐라고 말했나?
"'내 지금 관심은 사민당 당내문제지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독일 언론을 통해 접했다. 적절한 코멘트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오늘 영하 19도까지 내려갔다. 이런 추위와 북한의 전쟁 위협 속에서 살 자신이 있나?
"나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가게 돼 기쁘다. 물론 새로운 도전이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옆에 있는 분(김소연씨)이 도와줄 거라 믿는다. 설령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내 개인적 결정(결혼과 한국 거주)이 영향받을 일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또 나는 전쟁이 무섭지 않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북한 문제를 압박과 대화, 투 트랙으로 하고 있는데 적절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도 잘한 결정이다. 독일 통일에도 긴 시간과 인내심, 관철력이 필요했다. 일본의 군비 증강 움직임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여생의 반을 한국에서 살기로 했다. 한국의 정치·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생각도 있나?
"내가 기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정치에 관여하는 건 적절치 않다. 정치적 삶은 독일에서 25년이나 겪었고 그것으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유적지도 다니고 한국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일은 주한 독일 대사, 차범근 감독 부부와 함께 DMZ에 방문한다. 한국에서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삶을 살고 싶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이번 방한 목적은 뭔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개막식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기뻤다. 남북한이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만든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전력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건 안다. 그런데 올림픽 정신을 생각해보라.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승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로도 나온 '독수리 에디'의 일화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나. 그는 스키점프 실력이 형편없었지만 꾸준히 올림픽에 참여하며 결국 스타가 됐다."

-2년 전 통역사로 김씨를 만났다.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에 나오는 대사로 답하겠다. '이방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우리가 학문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그것은 받아 들여야 할 운명 같은 거다.' 나는 이번 결정은 그렇게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독일에서 부정적인 시선은 없나?
"없다. 존중해주는 것 같다. 아내는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의 새로운 연인을 밝혔는데, 나도 오늘 이렇게 공개하게 돼 기쁘다. 한국과 독일에서 반반씩 살 텐데 내가 좀 억울하다. 김소연씨는 두 나라를 잘 알고 언어에도 능통하다. 나는 배울 게 너무 많다. 대학수능시험보다 한국어가 더 어려울 것 같다."

-각자의 아이들은?
"내 큰 딸은 장성해 독립했고 미성년자인 아들과 딸은 엄마와 함께 살기로 합의했다. 가끔 함께 시간을 보낸다. 김소연씨 딸은 우리가 결혼하면 같이 살 것이다."

-서로 어떻게 부르나?
"공식석상에서는 슈뢰더 총리라고 한다. 사적으로 둘만 있을 땐 김소연씨가 나를 '게르하르트'라 부르고 난 '소연이'라 부른다. 결혼 후 부부싸움을 하고 풀어야 할 때 뭐라고 부를지도 배워놓았다. '자기야!'인 것으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