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혜 도쿄특파원

24일 새벽 5시 산케이신문 웹 사이트에 "아베 총리가 단독 인터뷰에서 '평창 개막식에 참석하겠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떴다. 같은 시각 '수상(首相) 평창 개회식에 참석'이라는 열 글자가 1면 톱으로 주먹만 하게 찍힌 신문도 일본 전역에 배달됐다.

요미우리신문과 NHK도 "총리가 평창에 갈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산케이·요미우리·NHK 기사가 모두 나온 뒤 오전 6시 좀 못 돼 도쿄에 있는 한국 대사관 실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총리가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알려줬다.

깜짝 놀란 대사관이 서울에 보고했다. 두어 시간 뒤 청와대가 출입기자들에게 "일본 측이 주일 한국 대사관에 아베 총리 방한을 공식 협의해왔다"고 브리핑했다.

이때가 오전 9시 15분. 그때까지도 일본 정부는 아직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청와대는 일본이 입 열기를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했다. 오전 9시 41분 청와대가 외신기자들에게 '일본 측이 총리 방한 계획을 공식 표명한 걸 환영한다'는 단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 외신기자들이 의아해했다. 여러 사람이 "어? 일본 총리는 아직 자기 입으로 온다는 얘기 안 했는데?"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되레 일본 정부가 당황하겠다"는 농담도 나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 및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로부터 1분 뒤(9시 42분) 아베 총리가 총리 관저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평창 개막식에 참석하겠다"며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일본 입장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확실히 전달하겠다"고 짧게 말하고 들어갔다. "대북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고 재확인하겠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보면 청와대가 먼저 "환영한다"고 말하고, 1분 늦게 아베 총리가 "가겠다"고 말한 꼴이다. 이 1분 속에 우리 외교의 현주소가 농축돼 있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청와대가 평창올림픽에 일본 총리를 초대했는데, 한국 정부는 그가 올지 말지를 일본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 대사관이 신문 보고 당황하고 있을 때 일본 정부가 "가겠다"고 전화해온 것이다.

둘째, 한국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두 달 남기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검증했다. 그래 놓고 아베 총리를 평창에 초대한 뒤 한 달 넘게 온다는 기별이 없자 속을 태웠다. 그러다 아베 총리가 온다고 하니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청와대에서 먼저 '환영한다'는 카톡이 튀어나왔다.

위안부 합의가 완벽하고 만족스럽단 얘기가 아니다. 이런 문제는 '한(恨)을 풀겠다'고 작심해서 풀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도쿄에서 매일 느낀다. '힘'과 '꾀'가 있어야 한다. 조급하면 진다. 우리는 1분을 못 참고 포커판의 하수(下手)처럼 외교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