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그날은 유독 추웠지요."

지난달 15일 경기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 1·21 침투로 앞에서 김신조(76)씨가 군사분계선 철조망 너머를 바라봤다. 그는 이 철조망을 뜯고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살해를 목표로 청와대를 습격한 31명의 무장공비 중 유일하게 생포됐다. 김씨는 "그해 4월 우리나라에 예비군이 창설되고 '유격' 용어가 생기는 등 전 국민이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다지게 됐다"고 했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1·21 침투로’에서 김신조씨가 1968년‘1·21 사태’당시 남한으로 침투해 오던 모습을 재연(再演)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18세부터 군 생활을 한 김씨는 북한 정찰국 소속 124군 1기생으로 뽑혀 침투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하면 공산화할까 그 생각 하나로 넘어왔는데 정작 생사기로 앞에서는 '나오면 살려준다'는 한마디가 머리를 흔들었다"고 했다.

수류탄을 내려놓고 공비들의 탈출로를 수사관과 함께 가며 "나 김신조다. 투항하자"며 설득했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동료 무장공비 시체 앞에서 '이 개XX야, 넌 변절자다'는 환청이 들려왔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 남한에 왔을 때는 매일 데모하고 파업하니 나라가 망할 것 같았지만 살면서 북한에서는 불가능한 '꿈을 선택할 자유(自由)'가 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가 귀순 후 목회자 겸 안보강사로 활동했던 이유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안보의식이 약한 듯한 게 안타깝습니다. 특히 국정원의 대공(對共)파트 축소가 걱정돼요."

김씨는 "국정원의 대공 기능이 다른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가정(假定)만으로 관련 조직을 축소하거나 해체하면 북한의 도발에 문 열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최근 부쩍 북에 두고 왔던 가족 생각이 난다"고 했다. 1983년 동향 사람 탈북 소식을 듣고 혹시 먼 친척이라도 살아있을까 기대하며 찾아갔더니, "북 정권이 집터 자체를 없애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작년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뚫고 귀순한 병사는 북한에서 굉장히 고위급 인사였을 겁니다. 그만큼 북한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증거입니다. 통일은 곧 올 겁니다. 그때 기준은 반드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선택할 자유'가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