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 수석논설위원

덴마크는 신재생에너지 최고 모범 국가로 꼽힌다. 풍력 터빈이 5500대나 있고 전기의 30%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그런데 덴마크의 2012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15t이었다. 독일도 풍력·태양광 우등 국가다. 그렇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1.03t이나 됐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6.97t, 스페인 7.26t, 스위스 6.35t, 스웨덴 5.64t이었다.

차이는 주로 원자력 활용도에서 온다. 프랑스는 2016년 원자력 발전 비중이 72%였고, 스페인·스위스·스웨덴은 20~40%였다. 덴마크는 원전이 하나도 없고 독일은 최근 몇 년 원자력 비중을 10% 약간 넘는 수준까지 낮췄다. 덴마크는 전기료가 비싸기로 악명 높다. 바람이 셀 때는 남는 풍력 전기를 이웃 국가에 싼값으로 수출하고 바람이 약하면 비싼 값에 수입해온다.

환경운동 진영이 원자력을 터부시하는 이유는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 해도 중대 사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安全)은 100% 증빙이 불가능한 법이다. '극미(極微) 확률'과 '재앙적 리스크'의 조합은 환경 이슈의 공통 딜레마다.

유전자 변형(GM) 작물의 경우 20년간 수십억명의 세계인이 섭취해 안전성을 실증했다. 환경주의자들은 그렇더라도 앞으로 GM 작물이 어떤 악마적 작용을 발현시켜 인류를 위협할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구 환경주의는 1960~70년대 황금 풍요 시대에 등장했다. 먹고살기는 좋아졌지만 공장 생산, 대량 소비에 수반되는 오염과 생태 파괴에 대한 반성으로 촉발됐다. 자연히 환경주의는 반(反)문명주의, 반(反)과학주의 흐름을 형성했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가 환경운동 전성기였다.

환경주의 사조는 많은 기여를 했다. 환경 법령·제도를 정비시켰고, 환경 투자를 일으켰고, 기업들 인식을 바꿔놓았다. 그 혜택을 지금 세대가 보고 있다. 이제 전통적인 오염은 대체로 해결됐거나 해결되는 단계다. 과학기술이 빚어낸 부작용을 과학기술을 적용해 극복한 것이다.

그럼에도 환경운동을 낳은 반문명주의, 반과학주의 사조는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이 자연에 몹쓸 짓을 해 더럽히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원자력, GMO 등의 과학기술은 인간 오만의 산물이라고 본다. 인간이 신(神)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계를 일탈하면 자연이 응징하게 될 것이다. 환경주의 사조는 산업사회 이전 농경사회를 동경하기도 한다.

반문명주의는 과학기술의 실용적 성취에 둔감하다. 과학기술이 인간에 풍요로움을 안겨줬더라도 조만간 또는 미래에 인간을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생태 붕괴는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가 쌓여가다가 어떤 임계점을 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지진을 예측할 수 없듯 재앙의 도래를 알아챌 수 없다는 것이다.

원자력과 유전공학 등의 과학기술이 인간을 궁지에 몰게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입증되지는 않은 일종의 주관적 확신이다. 그러나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었는데도 호황을 누리고 있고, 방사능 오염은 생각보다 별것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GM 작물은 농약·비료 사용을 줄여주거나 농지 생산성을 키워 되레 생태 보전에 기여해왔다. 추상적 관념으로 무장한 환경주의자들은 닥쳐올 위험을 경고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그러나 부유할수록 깨끗해진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인간 사회는 과학기술이 이룩한 성과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 환경주의자들의 도그마적 비관론은 인간이 밟아온 길과 동떨어져 현실감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