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이리 빨리? 날 어떻게 찾은 겁니까”

새마을금고에서 1억1000만원의 현찰을 들고 튄 ‘울산 은행강도’ 사건 피의자 김모(49)씨. 범행 6시간 만에 잡힌 그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체포 당시 김씨는 경남 거제의 한 모텔 방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나체(裸體)로 거제경찰서 임강호(50) 경위와 맞닥뜨린 김씨는 “으악”하는 비명과 함께 숨을 곳을 찾았다고 한다. 임 경위는 “피의자 김씨는 오른팔을 뒤로 꺾어 벽으로 밀어붙이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면서 “이 사람은 꼬리가 밟힐 걸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계속해서 ‘날 어떻게 찾은 거냐’고 묻더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오전 8시에 울산 새마을금고에서 은행강도를 벌인 뒤 약 130km떨어진 거제로 도주한지 6시간 30분만이다. 훔친 1억 1000만원 현찰은 검은색 배낭에 담긴 채 침대 오른쪽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울산 은행강도’사건 피의자 김모(49)씨가 18일 지난 새마을 금고에서 훔친 1억 1000만원과 돈다발을 담은 데 쓰인 가방.

피의자 김씨가 거듭 “이렇게 빨리 잡힐 줄은 몰랐다”를 중얼거린 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피의자 김씨의 계획은 이랬다. 사전 답사를 마치고 ‘표적’을 찍은 그는 ①울산 새마을금고 직원이 보안시스템을 거쳐 금고로 들어가려는 순간 ②준비해둔 흉기로 위협해서 금고문을 열게 한 다음 ③현찰을 챙긴 뒤 미리 대기해둔 오토바이를 타고 일단 근처 자신의 원룸으로 달아난다 ④ 여기서 승용차를 다시 갈아탄 다음 과거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거제시로 도주하면서 경찰 추적에 혼선을 준다는 게 김씨 범죄구상이었다.

실제 김씨의 범죄에는 막힘이 없었다. 이날 오전 7시11분쯤 새마을금고 뒷문을 열어 젖혀 숨어든 그는 은행직원이 출근하자 범죄계획 ①, ②, ③단계를 물흐르듯이 밟았다. 김씨는 금고 안에 있던 5만원권·1만원권 6200여장(약 1억1000만원)을 가져온 가방에 쑤셔담고, 은행직원의 온 몸을 청테이프로 감아 묶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분. 도주도 원활했다. 오토바이와 그랜저 승용차를 번갈아타는 수법으로 울산에서 부산, 다시 거가대교를 거쳐 거제로 돌아들어간 뒤 시내 무인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씨의 예상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바로 경찰의 기동력이 범행계획 ‘④단계’를 무위로 만든 것이다.

경찰은 울산 은행강도 사건 직후 울산, 부산 그리고 경남 일대에 비상을 내렸다. 경찰은 범행 장소 주변 CCTV를 분석하는 한편, 차량번호조회 시스템으로 김씨의 동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의 그랜저 차량이 거제로 진입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울산경찰청과 거제경찰서 형사 70여명이 ‘추적조’로 긴급투입됐고, 이들은 그랜저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거제시 옥포동을 샅샅이 뒤졌다. 추적조는 마침내 한 무인모텔 주차장에 세워진 피의자 김씨의 검정색 그랜저를 발견했다. 이때가 범행 4시간만인 오후 2시 무렵.

무인호텔 사방을 포위한 경찰은 모텔 출입구 CCTV를 열었다. 영상에는 김씨의 인상착의와 맞물리는 한 남자가 305호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오후 2시 25분, 17인의 ‘진입조’ 가 방검복을 챙겨입고 305호 문을 따고 들어갔다. 모텔 아래에는 김씨가 창문으로 달아날 것을 대비해서 에어매트까지 모두 설치된 상태. 이윽고 샤워하던 김씨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으악!”

’울산 은행강도 사건’ 피의자 김씨를 체포한 경남 거제경찰서 임강호(50)경위.

형사 25년 경력의 임 경위는 방검복을 미처 챙기지 못했지만, 진입조 선두에서 김씨를 제압했다. 임 경위는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검거하고 나서야 맨몸으로 용의자에 맞섰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태 다른 강도는 많이 잡아봤지만 ‘은행 강도’를 잡게 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전날 밤샘당직을 마치고 새벽 1시에 눈을 겨우 붙였는데, 은행강도 사건이 터지면서 오전에 급하게 불려 나왔다”고 했다.

경찰 조사결과 ‘울산 은행강도’사건 피의자 김씨는 부산·울산·경남 일대 조선소 하청업체를 옮겨 다니며 일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난 2월부터는 조선소 일이 끊기면서 일용직 노동을 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경찰은 전했다.

거제에서 붙잡힌 김씨는 다시 130km 떨어진 울산 동부경찰서로 이송되어 현재 추가조사를 받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김씨는 “빚 3000만원을 해결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먹고 살려고 그랬던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조사 테이블에 앉은 뒤에도 ‘내가 어떻게 추적됐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관에 묻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