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추진 계획이 연일 출렁이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남북 화해 분위기를 보여주는 무대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구상으로 인해 애꿎은 선수들만 상처를 받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6일 여자 아이스하키팀에 대해 “메달권에 있는 팀도 아니다”고 평가하며 선수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밝힌 우리 선수단에 북한 선수를 추가하는 ‘23+알파’ 안은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체육인들은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려다 벌어진 일”이라며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진행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이 총리 “女 아이스하키, 메달권 아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6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진행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게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북한 선수가 우리 선수의 쿼터를 뺏는 게 아니라 선수단 규모를 늘리는 것으로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아이스하키 경기는 선수들이 경기 시간 전체를 계속 뛰는 게 아니고 1~2분씩 계속 교대를 한다”면서 “북한 선수 가운데 기량이 뛰어난 선수 몇 명을 추가해 1∼2분씩 함께 뜀으로써 전력이 강화되는 것을 선수들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여자 아이스하키는 메달권에 있는 팀도 아니고 우리 팀은 세계랭킹 22위, 북한은 25위”라며 “우리 팀은 올림픽에서 한두 번이라도 이기는 것을 당면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총리의 발언을 놓고 네티즌들은 “메달권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것이냐”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약체이지만 세계 최고 무대에서 뛰기 위해 피땀을 흘린 선수들을 그렇게 낮게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메달권이 아니니 선수단이 출전하지 못해도 양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태릉선수촌장을 지낸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은 “올림픽 정신은 참가에 의미를 두고 있다”면서 “메달 가능성과 관계없이 선수들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메달과 순위가 올림픽의 기준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지난해 4월 강릉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4부 리그)에서 맞붙었다. 작년 3월 귀화한 랜디 희수 그리핀(30·왼쪽)이 북한 최희정을 피해 드리블하는 모습. 당시 한국은 압도적 경기력으로 북한을 3대0으로 꺾었다.

◆ 도종환 장관의 ‘23+알파’ 방침… “홈어드밴티지 누리겠다는 발상”

올림픽만 바라보며 오랜 시간 피땀을 흘렸던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북한판 낙하산’에 밀리게 됐다는 우려가 쏟아지자 정부는 우리 선수들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북한 선수를 명단에 추가하는 ‘23+알파’ 안을 내놨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6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우리 선수들에게는 피해가 없다. 23명 그대로 출전하는 것이며, 이에 더해 북한 선수단의 출전 규모를 플러스 알파로 IOC와 협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 장관은 “우리나라의 세계 랭킹이 22위이고, 북한이 25위로 경기력이 비슷하여 오히려 북한의 우수한 선수를 참가시키면 전력이 보강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와 도 장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우리 국가대표 명단에 북한 선수를 몇 명 추가하겠다. 메달권도 아닌데 선수를 몇 명 더 추가한다고 강팀들이 반대하진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체육인들은 이에 대해 "정치적 목적으로 스포츠의 기본 규칙까지 바꾸려고 한다"며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아이스하키는 체력 소모가 심한 스포츠 종목이다. 선수 간 충돌로 인한 부상 위험도 높다. 이 때문에 아이스하키는 별도의 교체 신호 없이 무제한으로 선수를 바꿀 수 있도록 규정이 돼 있다. 아이스하키 로스터에 선수를 더 두는 건 축구 시합을 '11:12'로 하는 격이라는 게 체육인들의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체육인은 “우리에게 유리한 규칙을 적용해서 거둔 1승이 얼마나 가치 있을지 의문”이라며 “올림픽이라는 최고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꿈꿨던 선수들의 땀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우리 정부의 제안을 수용할지도 의문이다. 이 전 의원은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진행되는 IOC 협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우리 팀에만 특혜를 주는 건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나올 것 같다”면서 “IOC가 소치올림픽 당시 러시아 국가대표의 도핑 파문으로 큰 곤혹을 치른 만큼, 게임의 공정성에 어긋나는 안을 수용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