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 3명 직격 인터뷰
"비행 파일럿보다 대공 수사관 배출이 더 어려워"
"외국 정보기관이 우리 경찰과 공조한다고? 어림없다"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 심각한 우려 표시

“정보기관이 경찰과 공조(共助)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대공수사를 포기하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 대해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국정원 메인서버를 열어 파헤치더니 이제는 아예 대공수사를 하지말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해외 정보, 대북 정보만 하라고들 하는데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해외, 북한 관련 정보 없이 국내에 숨어있는 간첩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느냐. 정보와 수사를 분리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14일 청와대가 발표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국내 정보 수집과 대공수사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국정원은 국내 정치 및 대공수사에 손을 떼고 오로지 대북·해외에 전념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최고의 전문정보기관으로 재탄생토록 하겠다”고 했다. 국정원의 중대한 잘못으로 드러난 ‘심리전단의 정치 댓글 사건’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1999년 안전기획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바꿨던 이름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요 대공사건은 대부분 국정원의 몫이었다. 실제 2000년대 이후 검거된 간첩 60여명 중 90% 이상이 국정원의 정보·수사 활동으로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 출신 인사들은 “국정원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도 간첩 잡는 수사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이 ‘대공수사’를 맡게 됐을 때 안보에 공백은 생기지 않을까.

국정원에서 대공수사 관련 업무 경험이 있는 전직 국장급 이상 간부 3명의 우려를 14, 15일 이틀에 걸쳐 들어봤다. 3명 모두 “현직 때 보고 들은 것은 모두 보안 사항”이라며 익명을 요구했다. 이들이 특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복된 내용을 추려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했다.

조선일보DB

-대공수사는 무엇인가. 일반 시민들에게는 개념 자체가 막연하다.
"휴전선이 보이는 적에 대한 방어선이라면 대공수사전선은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모든 수사다. 국내에 숨어들어 있는 남파 간첩 뿐 아니라 간첩 혐의자, 협조자, 나아가 협조 조직 등에 대한 포괄적인 수사가 대공수사다. 법적 근거는 국가보안법이다."

-대공수사가 다른 일반 수사와 다른 점이 있나. 공안수사와는 어떻게 다른가.
"수사하는 사람부터 다르다. 대공수사는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라 국정원은 대공수사 담당관의 경우, 별도의 채용절차를 거쳐 뽑는다. 국정원에선 제대로된 대공수사관을 키우는 것은 공군 파일럿을 배출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대공수사는 국내는 물론 해외 정보에서 시작된다. 해외 정보와 북한 관련 정보만 갖고 수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 혐의자, 이 혐의자와 해외에서 접촉하는 사람,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 등에 대한 움직임을 파악하는데서부터 수사가 시작되고, 오랜기간 정보 수집과 수사가 병행되는 구조다."
"공안 수사는 과거에는 국내 좌익세력에 대한 수사가 일반적인 개념이었지만, 최근에는 과격 시위, 폭력 집회, 불법 선거 등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범죄 행위에 대한 수사를 말한다. 경찰과 검찰의 보안, 공안 수사는 대부분 여기에 집중돼 있다. 북한 간첩에 대한 수사와는 엄연히 다르다."


-경찰이 이런 대공수사를 맡을 경우, 효율성은 어느 정도일까.
"국정원에는 외사와 보안, 방첩, 대북 공작, 정보 협력, 사이버 활동, 과학 장비 등 모든 기능이 모여있고, 50년 넘게 축적된 정보와 수사 노하우, 전문 인력, 국내외 첩보망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수사의 성과는 장담할 수 없다. 경찰이 이런 수사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내와 해외, 북한을 연결하는 입체적인 종합수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국내에서 일어나는 선거사범, 노동사건 등 공안 사건 수사에 적합하다."
"정보와 수사가 분리되면 수사가 성공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의 정보 수집과 추적을 통해 간첩 조직이나 배후 등 전모를 밝히려면 보안 유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관과 기관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보안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국정원 직원들은 같은 팀 팀원들끼리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도록 하고 있다."

국정원은 크게 해외정보, 국내정보, 대북(對北)정보 분야로 나눠져 있다. 국정원장 아래 1·2·3차장이 각 분야를 나눠맡고, 그 산하에 정보의 진위와 중요도를 판단하는 정보분석실과 실제 정보를 수집하는 인력을 두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과 규모는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보안을 위해 7국, 8국 등 자신들만 아는 부서 명칭을 쓰기도 한다.


"간첩은 확신범, 정보와 수사 노하우 있어야"
안보 공백 불가피… 전향 협조자 경찰 믿을까
경찰과 해외 정보기관과의 협력이 가장 문제


-경찰은 국정원 직원을 흡수하고 수사 노하우를 전수받겠다는 입장이다.
"간첩은 대부분 '확신범'이다. 조사할 때 대부분이 묵비권을 행사한다. 현행법 상 정식 수사 단계에서는 사실 관계 확인 정도 밖에 못한다. 내사는 오래할 수 있지만 신병 확보 후에는 시간상의 제약이 있어 실체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혐의를 밝혀 유죄를 받게 하려면 장기간의 정황 증거와 정보가 축적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경찰에) 직원 몇명 넘어가고 기술과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그게 잘 되겠나."
"국정원의 또하나의 중요한 임무는 방첩활동이다. 적의 첩보 활동을 막는 것이다. 방첩활동 과정에서 간첩, 혹은 간첩 협조자 등이 드러난다. 이들 중 전향하는 사람이 생겨야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향한 이들의 마음을 끝까지 끌고가려면 비밀보장과 신변보호를 보장해야 한다. 국정원이 수십년간 쌓아온 대외적 신뢰를, 경찰이 수사권만 넘겨받는다고 줄 수 있을 것 같나. 어렵다고 본다."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 방안이 발표된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

-그렇다면 '경찰의 대공수사'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뭔가.
"해외 정보기관과의 협력 문제다. 대공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정보다. 북한 인민군 정찰총국도 북한에서만 활동하지 않고 중국에 나와서 활동한다. 이런 정보는 '대북 정보'가 아니라 '해외 정보'가 된다. 북한의 해킹 등 사이버전 관련 정보는 중국에 머물지 않고 남미를 거치는 등 전세계를 상대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해외 정보기관들과 협조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경계하고 주시한다. 나라마다 이런 위험에 대비해 수십년간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해 왔다. 세계 어느 나라도 정보기관은 속성상 경찰과 협조를 하지 않는다."
"안보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다. 안보수사처를 만들어 전문성을 키우겠다는데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정상적인 대공수사 기관을 만들려면 인적·물적 인프라의 구축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그냥 새로운 국정원을 경찰 내부에 하나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성의 면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할 것이다."
"실적을 중시하다보면, '통진당 사건(국회의원 내란선동 RO 사건)' 같은 장기 수사는 불가능하다. 2010년 5월 내부 제보로 시작됐고 약 3년 간 내사를 통해 이석기 전 의원 등 민혁당 간첩사건 잔존 세력들이 종북 지하혁명 조직 'RO' 결성을 기도해 내란을 선동한 혐의를 포착했다. 이런 대공수사의 장기성, 기밀성 등을 경찰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정원이 정보를 생산해 경찰에 넘겨도 수사는 결국 증거와 진술이 중요한데 국정원 정보 수집 단계에서 진술한 내용을 경찰 수사에서 뒤집을 우려도 있다."

국정원 등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와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30여개 국가에서 정보기관이 국가 안보에 관련된 수사권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 예멘 등 분단 경험이 있거나 분단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나라들은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수사권 없이 정보 활동만으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를 지킬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 잘못으로 대공수사 업적 폄훼는 안돼"
유우성 간첩 사건, 댓글 공작 등이 개혁 원인
수사권 이관, 노무현 정권때도 검토하다 덮어

- 그런데도 정부가 대공수사권을 이관하겠다는 것은 국정원이 잘못한 일이 많기 때문 아닌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사실이다. 또 심리전단이 국내 정치, 선거와 관련된 인터넷 댓글을 올리고,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갖다주고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결국 국정원 직원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정치 권력이 국정원을 장악해 다른 용도로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분명히 북한의 대남 사이버전을 막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북한이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우리는 보고 있다. 증거도 확보했다고 들었다. 국정원 직원만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워 만든 것이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이었다. 국정원 업무의 원칙이 비노출·간접 활동이기 때문에 당시는 협조자에게 돈을 줘서 일을 대신 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과거 진보 정부 때도 대통령과 청와대 홍보 책자를 만드는 일을 심리전단팀에서 대신했다. 한미FTA 협상과 체결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었을 때도 이번과 똑같이 심리전단이 나서 인터넷 게시판, 댓글 등으로 정부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때도 아이디나 작성자 이름을 도용하거나 외부인의 것을 차용해 사용했다."
"과거의 잘못이 있다고 해서 국정원이 그동안 대공수사에서 이룩한 업적을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공수사권은 국가보안법과 함께 '체제 안보' 곧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보루다. 북한은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정부의 이번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 대해 평가한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국정원이 정치적 외풍을 받지 않고 간첩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법을 지키면서 인권 수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고 없애고 줄이는 게 아니라 더 잘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대공수사는 국내 정치와 연관이 없다. 국내 파트에서 정치인이나 정치 상황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대공수사를 위해 필요한 정보라면 있어야 할 기능이다. 물론 일부 국정원 지휘부나 직원들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엇나간 부분이 있지만 대공수사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행위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공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옮기는 것을 논의했지만 안보 누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없던 일로 했었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이런 부작용과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텐데 왜 이러시는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