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가끔씩 집 안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 책장도 예외가 아닌데, 그럴 때마다 책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위치도 바꾸게 된다. 자주 들여다보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이 가장 좋은 위치에 꽂히고 그렇지 않은 책들은 손이 잘 안 닿는 구석으로 밀린다.
직업이 정원사이다 보니 식물과 원예, 정원 관련 책들이 으레 상석을 차지한다. 이 서적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식물도감이나 이론서 등 진지한 공부를 위한 전문 서적이다. 두 번째는 꽃과 정원을 글감으로 한 교양서와 에세이다. 후자 부류의 저자들은 대부분 소설가, 시인, 저널리스트, 예술가들로 각자 자신이 체험한 정원 일의 즐거움과 정원에서의 일상을 위트 있고 군더더기 없는 글로 아름답게 그려 나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타샤 튜더, 헤르만 헤세, 마이클 폴란, 카렐 차페크, 거트루드 지킬, 윌리엄 로빈슨 등이 그들이다.
인문학적 바탕 위에서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 정원 일의 아름다움 속에는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 신비로운 계절 변화에 대한 예찬, 가드닝이라는 고된 노동을 통해 땀의 신성함과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그리고 물질주의적 세태에 염증을 느끼고 조용히 정원에서 사색하며 기록한 아름다운 삶에 대한 발견이 녹아 있다.
가드너인 나에게 식물과 원예에 관한 전문 지식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책들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두고 망설일 때 결정적인 힘이 되어 주고, 일을 하면서 중간 중간 휴식과 에너지가 필요할 때 위로와 격려가 되어 주며, 무엇보다 새로운 정원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데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이 책들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의 책장에서 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책장을 옮기며 인문학의 도움 없이는 흙 만지고 삽 잡는 일도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