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는 당연히 '결혼'을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또래 친구 열 명이 결혼해 사는 걸 보니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내 부모님도 못 챙기는데, 남의 부모님 생신이며 명절 챙기러 다니는 게 끔찍하다. 게다가 아이까지 낳아 먹이고 입히고 할 자신이 없다."

"무섭다. 엄마가 나를 낳고 일 그만둔 후 지금까지 직업을 갖지 못했다. 엄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들어왔는데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결론이 '우리 엄마처럼 된다'였다. 당연히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회사가 '일찍 퇴근하는 날'을 시행하고 있다. 동료 남자 직원들이 아내에게 '일이 있다'고 말하고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더라. 결국 결혼해 아이 낳으면 '독박 육아'다. 경력 쌓고 혼자 사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출산한 친구나 아는 언니들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를 겪더라. 공무원이나 은행원 아니면 육아휴직도 힘들다는데,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어진다. 지금 삶의 방식을 포기하기도 싫고."

88년에 태어나 비교적 좋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이런 얘기를 쏟아놨다. 이들 말에 공감할 수도, 비난하거나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이렇게 생각하는 청년 세대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출산 세대'중 '비출산'을 결심하는 이들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가 여론조사 회사인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출산 및 육아 세대(25~45세 남녀 1004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미혼자 셋 중 하나, 자녀가 없는 기혼자 넷 중 한 명이 '앞으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답했다.

'앞으로 자녀를 가질 생각이 있나'라는 질문에 미혼자의 32%가 '없다'고 했다. 특히 여성(43%)이 남성(25%)에 비해 '무자녀' 의견이 훨씬 높았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가 없는 기혼자의 25%가 '앞으로 아이를 안 낳겠다'고 했다. 이 경우에도 남성(18%)보다 여성(29%)이 '무자녀' 계획에 더 적극적이었다. 무자녀 기·미혼 여성들은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자신이 있나'라는 질문에도 3명 중 1명(34%)이 '자신 없다'고 답해 '자신 있다'는 32%보다 많았다. 현재 자녀가 한 명인 가정에서도 '아이를 더 안 낳겠다'는 응답이 55%로 다수였다. 남성(45%)에 비해 여성(62%)이 향후 추가 출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이처럼 심각한 수준의 출산 기피는 '돈 걱정'과 '집 걱정'도 있지만, '막연한 불안감'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출산 포비아(phobia·공포증)'다. 무자녀 기·미혼자에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절반이 넘는 52%가 '구체적 이유보다는 부담감과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48%는 '직장·건강·육아·경제력 등 구체적 이유'를 들었다.

'출산·육아 공포'는 지인·친구, 직장, 미디어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있었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과 불안감은 어디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가'란 질문에 무자녀 기·미혼의 절반가량(46%)이 '친구나 직장 동료 등의 경험담'이라고 했고, '뉴스 등 언론 보도'(22%)도 높은 순위에 올랐다. 이어 '부모 등 기성세대의 경험담'(15%), '소셜 미디어(SNS)와 인터넷 커뮤니티'(9%), 'TV 드라마와 영화'(5%)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