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에 걸린 102개의 금메달 중 6개는 신설 종목에서 나온다.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매스스타트와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조), 알파인스키 팀 이벤트, 스노보드 남녀 빅에어 종목이다.
오스트리아의 스노보더 안나 가서(26)는 여자 빅에어 종목에서 올림픽 최초 우승이 유력한 선수다. 빅에어(Big Air)는 스노보드를 타고 높이 30m, 길이 100m 점프대에서 도약해 공중 동작과 착지의 완성도, 비거리를 겨루는 종목이다. 롤러코스터를 떠올리게 하는 경기장에서 아찔한 공중 동작이 펼쳐져 '설원(雪原)의 서커스'라 불린다. 북미나 유럽 지역 팬들에겐 '익스트림(극한) 스포츠'로 사랑받고 있다. 가서는 작년 11월 평창올림픽의 테스트이벤트로 알펜시아에서 열린 스노보드 월드컵 빅에어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3월 세계선수권 금메달도 목에 거는 등 최강자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대개 세계 정상급 스노보드 선수들은 꼬마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눈 밭에서 경력을 쌓는다. 그런데 가서는 19세 때 처음 스노보드를 접한 늦깎이다. 원래는 기계체조 선수였다. 어릴 때 취미반으로 시작해 엘리트 체조 선수의 길을 밟는 듯했다. 하지만 열다섯 살 때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긴다"는 이유로 미련 없이 체조를 그만뒀다.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던 가서는 2010년 여름 사촌이 우연히 보여준 스노보드 경기 영상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해 겨울 스노보드에 처음 발을 올려보더니 며칠 뒤 친구들에게 "프로 스노보드 선수가 되겠어"라고 선언했다. 친구들은 코웃음을 쳤다.
인생의 새 길을 찾았다고 생각한 가서는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스노보드에 매달렸다. 성장 속도는 놀라웠다. 스노보드에 입문한 지 3년 만에 '더블 콕 900(상하좌우로 몸을 비틀며 두 바퀴 반을 회전하는 기술)'을 성공한 첫 번째 여자 선수가 됐다. 지난 3월 세계선수권에선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도는 '더블 콕 1080'까지 성공시켰다.
전문가들은 가서의 기계체조 경력이 폭발적인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 빅에어의 경우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공중에서 모든 기술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기계체조의 도마 종목과 비슷하다. 가서는 빅에어 종목 외에 슬로프에 설치된 여러 도약대와 인공 장애물을 이용해 스핀(공중 좌우회전), 플립(공중 상하 회전), 그랩(점프 중 자신의 보드를 잡음) 등을 선보이는 슬로프스타일도 병행한다. 다양한 기물을 지나야 하는 슬로프스타일은 균형 감각이 필수적이다. 오랜 시간 기계체조의 평균대 위에 섰던 경험을 지닌 가서는 그런 면에선 강점을 발휘할 수 있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에서 우승했던 중국의 한샤오펑은 어린 시절 서커스단의 곡예사를 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에어리얼 역시 스키를 타고 점프대 위로 도약한 다음 공중에서 묘기를 겨루는 경기다.
가서는 2014 소치올림픽에서 신설 종목인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에 출전했다. 예선에선 1위를 했지만 경험 부족 탓인지 결선에선 실수를 하며 10위로 밀렸다. 절치부심한 가서는 작년 11월 이탈리아 밀라노 월드컵 빅에어 종목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다. 이번 시즌 들어선 월드컵 빅에어에서 2회 금메달을 일궜다. 올해 동계 엑스게임의 슬로프스타일에서 금1, 빅에어에서도 은1·동1를 따냈다. 평창에서 2관왕에 도전하는 가서는 "작년 평창의 기억이 정말 좋았다"며 "한국 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