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대형 참사가 된 원인 중 하나는 소방차 진입을 가로막은 불법 주정차였다. 사고 후에도 불법 주정차 차량은 그대로였다. '제천 화재'만의 상황이 아니다. 2015년 경기도 의정부시 아파트 화재 때 불법 주정차 때문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파트 입구 양쪽에 불법 주차된 20여 대 차량들로 소방차 현장 진입이 15분 이상 늦어지는 바람에 주민 4명이 사망하고 126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이다. 대규모 화재 사고 때마다 불법 주정차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전국 곳곳에서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 지난 26일 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차량들이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에 버젓이 주차해 있다. 일부 외제차의 경우 기어를 중립으로 놓을 수 없어 손으로 밀어낼 수도 없다.

27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입구. 아파트 단지 안으로 이어지는 100여m 길이의 왕복 2차선 진입로는 주차장처럼 변해 있었다. 도로 한가운데 중앙선을 따라 1t트럭 등 20여 대의 차량이 일렬로 불법 주차돼 있었다. 도로 양쪽에 그려진 주차선 안에는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빼곡했다.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이 도로의 1개 차로 폭은 6.5m지만, 양쪽과 가운데 주차된 차량 때문에 반쪽 도로가 됐다. 폭 3m짜리 소방 펌프차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였다.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불법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지연되면서 피해가 커졌다. 제천 화재 현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 곳곳에서 똑같은 상황이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27일 밤 서울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차들이 이중 삼중으로 어지럽게 주차돼 있다. 한번 잘못 들어가면 후진이 힘들 정도로 빽빽해 주민들도 애를 먹는다. 소방차 진입은 엄두를 내기 어려울 정도다.

같은 시각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주차장 가운데 공간에 이중 주차해 놓은 차량만 50여 대.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은 2.5~3m에 불과했다. 주차장 한편에 그려진 소방차 전용 주차 구역 4곳을 승용차 13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지어진 목동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이 없다. 이 아파트 613~615동에는 총 394가구가 입주해 있다. 하지만 이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주차장에 그려진 주차 공간은 129개에 불과하다. 양천소방서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 내 주차는 불법이 아니지만 이중·삼중으로 주차된 차들로 인해 고가 사다리차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비교적 작은 펌프차가 비집고 들어가도, 차를 좌우로 움직일 공간이 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시장 근처 - 27일 오후 서울 종로6가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 오토바이들이 불법 주차돼 있다. 일방통행 차로를 수십 대의 오토바이들이 점령해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기 어렵다.

대부분 화재는 발생한 지 5분 안에 진압을 시작하지 못하면 연소 확산 속도와 피해 면적이 급속도로 증가한다. 고층 아파트는 바람이 많이 불어 불길이 빨리 번진다. 아파트 화재에는 보통 펌프차, 고가 사다리차 등 소방차 10여 대가 출동하는데, 불법 주차 차량으로 진입로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다.

대전 주택가 - 불법 주차는 지방 주택가도 예외가 아니다. 27일 오후 대전의 한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에서 승용차 한 대가 골목 도로 양쪽에 불법 주차된 승용차를 피해가며 지나고 있다.

일반 주택가와 상가 밀집 지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주택 밀집 지역. 원룸 오피스텔과 일반 주택으로 둘러싸인 한 도로 주변에는 양쪽으로 불법 주차 차량 10여 대가 있었다.

2017년 12월 27일 오후, 서울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다. 소방차전용 주차공간이 있지만 차들이 대각선으로 주차되어 있어 승용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공간밖에 없다.

도로는 중형차량 1대씩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관악 소방서 관계자는 "빌라촌은 아파트에 비해 화재 사고가 잦지만, 골목이 좁은 데다 불법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애를 먹는다"며 "견인차를 불러 차량 5대를 끌어내려면 15분 이상 지체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먼 길을 우회해서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소방관들은 "불법 주차 차량을 끌어내는 데 힘을 쓰느라, 정작 불을 끄거나 사람을 구할 때는 힘이 빠진다"고 한다.

27일 오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이면주차 차량들로 도로가 좁아진 가운데 차량 간 혼잡이 빚어지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6가 인근 동대문종합상가 옆 2차선 도로에는 오토바이 수십 대가 비스듬히 불법 주차되어 있었다. 상가 건물 1층에는 각종 원단과 의류 자재를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입점해 있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상가와 인접해 있는 도로 구간은 불법 주차된 오토바이들 때문에 사실상 1차선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을 통과하는 시내버스는 오토바이에 부딪히지 않도록 시속 10㎞ 이하로 속도를 낮춘다. 이 건물 상인 한모(64)씨는 "불이 나면 소방차 진입이 안 돼 속수무책이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했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주택가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

긴급상황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들을 끌어낼 장비나 인력은 모두 부족하다. 소방 당국이 전국에 보유한 견인차는 서울 3대, 인천 1대 등 총 4대에 불과하다. 불법 주차 차량이 많은 곳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견인차가 함께 출동할 여건이 안 되는 것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각 소방서가 사설 견인업체 연락망을 보유하고 만일의 경우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일선 소방서 지휘관은 "상습 불법 주정차 구간은 아예 없는 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