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서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서 강한 것이다.'

2m 이상의 장신(長身)이 즐비한 거인 숲에서 단신(175㎝)으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 남자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프로배구 최고령 현역인 여오현(39·현대캐피탈) 플레잉 코치 이야기다.

여오현은 지난 17일 우리카드전을 치르며 프로 통산 남녀부 최초로 '500경기 출전(포스트 시즌 포함)'을 달성했다. 최근 천안 현대캐피탈 훈련장서 만난 그는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결장한 경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며 "그것도 아파서 빠진 게 아니고 대표팀 훈련 등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이었다"고 했다. 2000년 실업 삼성화재에 입단해 2005년 프로 출범을 거쳐 지금까지 개근하는 여오현의 얼굴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배구 선수치고 단신(175㎝)인 여오현의 별명은 ‘수퍼 땅콩’이다. 하지만 어떤 장신 선수보다 정열적으로 코트를 누빈다. 내년 마흔이 되는 여오현의 목표는 45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 19일 여오현이 현대캐피탈 훈련장에서 배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여오현은 리베로(수비 전문 선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공을 처음 잡은 그는 고교 때까지는 종종 스파이크를 때렸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1997년 리베로 제도를 처음 도입하면서 배구 인생이 달라졌다. "전 운이 참 좋아요. 어차피 키가 작아서 대학(홍익대) 졸업하면 배구를 접으려고 했는데…."

여오현은 대한민국 최고 리베로가 됐다. 통산 디그(상대 공격을 받아내는 것·4566개)와 리시브(상대 서브를 받아내는 것·6711개), 수비(디그+리시브) 모두 경쟁자 없는 압도적 1위다.

여오현은 평소 필라테스로 유연성, 순발력을 유지한다.

코트 구석구석에 몸을 던지는 리베로는 극한 직업이다. 수만번 공을 받아 내느라 몸 구석구석이 까지고 멍든다. 그런데 남들 다 하는 서브·스파이크·블로킹도 못한다. "티도 안 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속상했죠. 멋지게 점수 내는 공격수가 부럽기도 했고요. 이젠 팬들이 다 알아줍니다. 공을 받아내면 스파이크 성공한 것 못지않게 응원해주세요."

여오현은 내년에 불혹(不惑)의 나이를 맞는다. 그는 "예전보다 회복 속도가 확실히 더뎌졌다. 장어즙 먹고, 훈련 조절도 해야 체력 관리가 된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다'는 늘었다고 한다. "원래 라커룸에서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이젠 후배들만 보면 말이 계속 나와요. 저도 이렇게 아재가 되나 봐요."

[배구선수 여오현은 누구?]

여오현은 작년부터 구단의 도움을 받아 '45세 현역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후배들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프로에서 쉽지 않은 도전이다. 비시즌 기간 의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가장 고역이었다. 여오현은 "원래 식탐이 많은데 샐러드랑 팍팍한 닭 가슴살만 먹기 괴로웠다"며 "그래도 체중 4㎏을 빼서 몸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필라테스를 한다. 여오현은 "리베로에게 꼭 필요한 순발력, 유연성을 강화하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다"고 말했다. 스쿼트 무게 180㎏을 소화하는 그의 근력은 20대 후배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여오현의 큰아들 광우(11)군도 지난해 배구를 시작했다. 아빠와 달리 세터 포지션을 맡는다. 그는 "아들이 리베로는 안 하겠다는데 키가 또래보다 큰 편이 아니에요. 만약 리베로를 한다면 모든 비법을 전수해야죠"라며 웃었다.

리베로의 대명사인 여오현은 "정말 꾸준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칠 무렵 기자에게 '내가 정말 45세까지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이미 답은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