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젠슝 교수는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크로드와의 관련성이라는 역사적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목적은 중국의 패권 장악인가, 유라시아 국가들의 경제 공동체인가.

1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거젠슝(葛劍雄) 중국 푸단대 석좌교수 초청강연은 중국 사회에 영향력 있는 중진학자가 일대일로 정책의 역사적 배경과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로 시선을 끌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지리학자인 거 교수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으로 중국 정부의 대내외 정책에도 관여하고 있다.

거젠슝 교수는 "일대일로를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재건'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독일 학자 리히트호펜이 장안(현재 시안)에서 사마르칸트까지 교역로에 이름 붙인 실크로드(Silk Road)의 주역은 중국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였다. 중국은 옥문관·양관 너머는 이민족 세계로 생각했다. 또 상인의 지위가 낮고 국경 통제가 엄해서 중국인이 외국에 가서 교역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나라 때 장건이 서역(西域)에 간 것도 흉노를 협공하기 위한 군사·정치적 목적이었고 그가 가져간 비단도 서역 군주들에게 주는 하사품으로 무역용은 아니었다.

실크로드 무역으로 이익을 챙긴 것은 중앙아시아·페르시아·아랍 상인이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거대한 비단 수요에 적극 부응했다. 당나라 때 안사(安史)의 난(亂)으로 실크로드가 막히자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장악한 것도 페르시아·아랍인이었다.

거젠슝 교수는 "따라서 일대일로는 중국인에게는 실크로드의 '연속'이 아니라 '창신(創新)'"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가 만들었던 실크로드를 이번엔 중국이 중심이 돼 다시 발전시키겠다는 제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대일로를 중국의 대외 전략으로 보는 시각을 거부했다.

일대일로의 성공 여부는 다른 나라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거 교수는 전망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호혜·공영의 이익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대일로가 중국의 팽창 전략이 아니라는 거젠슝 교수의 입장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약정 토론자인 정재훈 경상대 교수는 "일대일로가 상호협조를 추구한다는데 중국에 이념과 이익의 분리가 가능한가"라고 질문했다. 거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영도력이 강화되고 여러 나라가 이를 인정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며 "중국의 패권국가화를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한 청중이 "중국이 남사군도 등 주변국들과의 갈등부터 해결해야 이익공동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거 교수는 "'영토 분쟁은 후대에 맡기자'고 한 덩샤오핑이 현명했다. 분쟁의 장기화는 바람직하지 않고 점차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 사회를 맡은 윤병남 서강대 교수는 "거젠슝 교수의 주장은 주변국의 거부감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며 '일대일로' 이론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이 추진 중인 신(新)실크로드 전략. 일대(一帶)는 중앙아시아~유럽을 잇는 육상 교역로, 일로(一路)는 동남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해상 교역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