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에서 지난 18일 발생한 타워크레인 인명 사고는 백약이 무효인 국내 건설산업 현장의 안전관리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고 크레인은 불과 8일 전 정기검사를 통과했다. 지난 9일 근로자 3명이 사망한 용인 타워크레인도 지난달 16일 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가장 기본이 돼야 할 안전 체크 시스템조차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기회에 무너진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믿을 수 없는 타워크레인 검사

경찰은 19일 평택 타워크레인의 사고 원인이 크레인 높이를 올리는 핵심 부품인 유압실린더와 슈 거치대 결함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압실린더는 마스트(기둥)를 들어 올리는 장치고, 슈 거치대는 상부를 지탱하는 받침대다. 안전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품이나 지난해 말 개정된 정부의 '타워크레인 검사기준' 27개 항목에는 이들이 누락돼 있다. 한 검사기관 관계자는 "타워크레인을 작동시켜야 점검 가능한 부품들이라 포함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검사 기준에는 하중을 매달고 운전하는 등의 동작 시험이 포함돼 있다. 임대업계 관계자는 "검사가 형식에만 그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검사를 받는 업체가 검사기관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점도 허술한 검사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6개 검사기관에 위탁해 크레인을 설치할 때 검사를 받도록 한다. 이후 6개월마다 정기 검사가 의무다. 업체들은 까다롭게 검사해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기관을 기피하고 합격률이 높은 기관으로 몰린다. 안전 검사에 합격하고도 수일 만에 사고가 난 용인과 평택 크레인의 검사기관은 불합격률이 1.7%에 불과하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이승현 정책국장은 "산업안전공단 같은 정부기관이 맡아 강제 지정 검사가 되도록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원의 책임감 부족도 지적된다. 한 민간 검사기관 관계자는 "검사 비용이 턱없이 적다 보니 대충 검사하는 검사원도 있다"고 말했다. 크레인 점검비는 10t 이상이면 9만1000원, 10t 이하는 8만5000원이다. 1회 검사에는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시급으로 따지면 3만원이 안 된다.

◇크레인 현장에서도 막강한 민노총

업계에서는 크레인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민노총의 갑질'도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 분과는 타워크레인 근로자 85%가 소속된 최대 노조다. 평택 타워크레인 사고는 민노총 소속인 운전기사가 임시로 교체된 가운데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타워크레인을 높이는 작업을 앞두고 운전기사가 "위험하고 까다롭다"며 작업을 거부하자 크레인 임대업체에서 부랴부랴 다른 기사를 데려온 것이다. 한국노총 전국타워크레인 설·해체노동조합 관계자는 "민노총이라는 막강한 조직을 등에 업고 설치·해체 등 위험한 작업의 운전을 거부했다"며 "새로 온 기사가 익숙하지 않은 기계로 위험한 작업을 하니 사고 위험이 커진 것"이라고 했다.

설치·해체업자 부족과 부실한 자격 요건도 한몫한다. 설치·해체 작업을 하려면 타워크레인 한 대에 5~7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작업은 36시간 동안 타워크레인 설치·해체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맡을 수 있다. 교육 과정 중 현장실습 교육은 6시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아 신참이 공중에서 고난도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본지가 아르바이트 알선 사이트에 공고를 올린 업체에 일자리를 문의했더니 "공구 명칭을 아느냐" "고소공포증이 있느냐"는 두 가지 질문만 하고 "일을 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연식도 제대로 모르는 장비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에는 6074대의 타워크레인이 있다. 외국산이 3475대(57%)로, 이 중 중국산이 1344대로 가장 많다. 국산 크레인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수입이 늘었다. 평택 현장에 설치된 프랑스 포테인사의 타워크레인도 중국에서 제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산 크레인은 생산연도를 신뢰하기 어렵다. 수입업자는 제작사가 만든 증명서가 아니라 수입사실증명서를 내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특히 중국산 중고 크레인은 제작 일자를 조작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연식이 더 오래됐을 것이란 지적이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