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빨리빨리 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김이 오르는 뜨거운 왕만두를 한입에 욱여넣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를 구태여 두 계단씩 성큼성큼 오르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서 답장이 재깍 오지 않으면 답답함을 참지 못해 수화기를 든다. 그녀의 급한 성미는 컴퓨터로 문서 작성을 할 때 확연하게 드러난다. 온갖 단축키를 써가며 키보드를 번개같이 갈겨대는데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로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여장부처럼 드센 그녀를 밉살맞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매사에 느려 터진 나의 눈에는 화끈한 그녀의 모습이 세상 제일 멋있기만 하다.

그녀는 결혼 역시 빨리하고 싶어 했다. 아들이고 딸이고 힘닿는 데까지 쑥쑥 낳아서 복작거리며 살고 싶은데, 그러니까 두 명은 너무 적은 것 같고 한 다섯 명쯤 낳았으면 하는데, 그러려면 젊고 건강할 때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하나 애석하게도 그녀와 함께 가정을 꾸릴 만한 남자는 이십 대 내내 나타나지 않았고, 어느덧 우리는 삼십 대 중반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결혼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 다섯을 낳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야, 네가 무슨 흥부 마누라냐? 요즘 세상에 누가 다섯이나 낳아. 그냥 둘로 해, 둘로!" 하는 장난스러운 말로 상심에 빠진 친구를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다산의 여왕이 되고 싶었던 그녀의 꿈은 그렇게 멀어져 가는가 싶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드디어 애인이 생겼다. 키 크고 잘생긴 연하남이었다. 그것참 수지맞은 일이로구나 생각한 것도 잠시, 설마설마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두 사람이 만난 지 삼 개월쯤 되었을 무렵 그녀가 결혼을 선언해버리고야 만 것이다. 나는 어른들 말씀처럼 사계절은 겪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녀를 극구 만류해 보았지만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야. 내가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 빨리 엄마 되고 싶은 거 너도 알잖아. 여기서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한번 결정한 일은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그녀임을 알기에 더는 말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 잘됐다. 어린 남자 만났으니까 애 다섯은 거뜬하겠는데!" 하며 그녀를 축하해 주었지만, 사실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오만 가지 걱정을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내년 봄으로 결혼 날짜를 잡아 식장을 알아보는 중이며 신혼살림을 차릴 전셋집은 이미 구한 데다가 전세자금 대출까지 받았단다. 아이고, 숨차. "낡고 좁은 다세대 주택이기는 한데 앞으로 조금씩 늘려나가야지 뭐. 언제쯤이면 대출금 다 갚고 아파트 살 수 있는지 문서로 정리해 놨어. 그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돼." 그녀의 당찬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고 나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우당탕퉁탕 때려가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픽 웃음이 났다. 그래, 박력 있는 그녀는 잘살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얼른 식장을 잡아야 할 텐데. 봄이면 결혼 성수기라 벌써 예약이 꽉 찼을 수도 있단 말이지. 얘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빨랑빨랑 해결해야지 뭘 이렇게 꾸물대고 있는 거야. 아휴, 급하다 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