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사드 보복 사태를 지켜보면서 중국의 상층부에 공부 많이 한 고단자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역(周易)에도 밝고 역사의 호흡을 길게 보면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전략을 짤 만한 브레인은 없는 것 같다. 역대 중국 전략가의 특징은 속 깊은 ‘만만디’인데, 현대에 와서 이러한 만만디가 안 보인다. ‘즉석 불고기’ 수준이다. 한국인의 기질은 ‘몰빵’을 좋아해서 중국에다 몰빵 투자를 하려는 중이었다. 그 일보 직전에 사드 보복을 하니까 중국인의 속내를 파악하고 한국이 스톱해 버렸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의 모델이기도 했던 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1779~1855). 임상옥이 북경에 인삼을 팔러 갔다가 북경 상인들의 술수에 걸려들었다.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불매운동이었다. 귀국 날짜는 다가오는데 북경 상인들이 ‘헐값에 준다면 모를까 정상 가격으로는 사지 않겠다’는 작전을 폈다. 다른 인삼 장사는 여기에 굴복하고 가격을 대폭 할인하여 팔았지만, 임상옥은 오히려 ‘너희가 이렇게 하는 짓은 비겁하다. 그럴 바에는 내가 이 인삼 다 불 질러 버리고 가겠다. 너희도 인삼 못 사고 나도 망해 버려야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시범적으로 약간의 인삼을 불에 태웠다. 당황한 북경 상인들에게 시세보다 비싸게 인삼을 팔았음은 물론이다.

논개 영정.

일제 때 경북 영천·영덕에서 사업을 했던 친일 사업가 문명기(文明琦·1878~ 1968). 그는 한지(韓紙)가 중국에서 아주 인기가 좋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경상도 일대에서 나오는 종이를 거의 매집하여 기차에다 싣고 만주로 갔다고 한다. 돈이 없었던 그가 엄청난 분량의 한지를 사들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일본인 영천경찰서장이 신용보증을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상인들이 문명기의 엄청난 한지 더미를 보고 퇴짜를 놓았다. ‘종이를 반값에 팔아라. 안 내리면 안 사겠다.’ 그러자 문명기는 일부 종이에다 불을 질렀다. ‘나도 망하고, 그 대신 너희도 종이 못 사서 손해 봐라!’ ‘나 죽고 너 죽자’는 조선인의 기세에 놀란 중국 상인들이 시세보다 몇 배에 그 종이를 살 수밖에 없었다. 문명기는 이 장사로 부자가 되었다. 김용운(金龍雲) 선생은 한국인의 무의식에 ‘논개정신’이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