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할머니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잼에서 시작… '슈퍼잼' 팔아 스무살에 백만장자
고교 중퇴, 현장에서 사업 배워… 현재 메트로폴리탄대학교 최연소 객원 교수
"집중해라, 그러나 올인하지 말라"... 48시간 창업 매뉴얼 '나는 돈이 없어도 사업을 한다' 출간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업가 프레이저 도허티(29세). 16살에 영국의 초대형 유통업체 웨이트로즈에 자신의 브랜드 ‘슈퍼잼'을 납품하면서 스타 창업가가 됐다. 현재 슈퍼잼과 슈퍼허니, 온라인 수제 맥주 비어52 사업을 하고 있다.

스무 살에 자수성가로 백만장자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늘의 귀여움을 받지 않고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주식 투자나 공유 경제에 기초한 IT기업이 아니라 과일잼, 커피, 맥주 같은 평범한 먹거리를 세계 시장에 팔아 100억대 자산을 일군 사업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의 청년 프레이저 도허티 이야기다.

16살 소년이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천연 과일잼 ‘슈퍼잼’은 지금 전 세계 2000여 개 매장에서 연간 100만 병씩 팔리는 글로벌 상품이 됐으며, ‘포브스' ‘가디언' 등 유력 매체는 앞다퉈 그를 영국을 대표하는 젊은 사업가로 선정했다. 10살 때부터 이웃에서 얻어온 달걀 몇 개를 부화시켜 팔기 시작했다는 천재적 창업 스토리는 일본에 드라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엘리자베쓰 2세 여왕은 그의 혁신적인 산업 공로를 인정해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했다.

젊은 백만장자를 만났다. 희고 투명한 피부가 강추위를 만나 얼굴이 싱그럽게 붉었다. 미소를 띤 채 수줍어하는 태도는 영락없는 20대인데, 맥주 시음으로(최근 온라인 수제 맥주 ‘비어52’를 창업했다) 볼록 나온 배를 보니 산전수전 다 겪은 관록의 사업가였다. 올해 스물아홉,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직 ‘더 실패해도 좋을 나이'였다.

-스무 살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여전히 백만장자인가?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웃음).”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

“100% 과일잼인 슈퍼잼 사업과 양봉 꿀 사업인 슈퍼 허니, 수제 맥주를 공급하는 B52를 운영하고 있다. 여러 맥주를 시음하다 보니 배가 좀 나왔다(웃음). 그리고 사람들에게 창업을 부추기는 일도 하고 있다. 10년 전, ‘나는 스무 살에 백만장자가 되었다'라는 책을 쓸 땐 나 혼자만의 성공담이었다.

최근에 쓴 ‘나는 돈이 없어도 사업을 한다'는 48시간 안에 창업하는 법이다. 돈 많고 유능한 사람만 사업하는 게 아니라 돈 없고 평범한 사람도 이틀 안에 창업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웹사이트 구축부터 아웃 소싱, 디자인, 홍보까지 내 노하우를 전부 적어두었다(웃음).”

‘나는 돈이 없어도 사업을 한다'의 영어 원제는 ‘48 Hours Start-up’이다. 말 그대로 자본 없이 이틀 안에 창업하기다. 전반부는 그 자신의 흥미진진한 창업 무용담이다. 후반부는 48시간 안에 창업하기 위한 행동 지침을 시간대별로 차분하게 정리했다. 첫째 날 오전 8시, ‘당신의 관심사를 목록으로 작성한다’에서 시작해서 둘째 날 오후 7시 11분, ‘드디어 첫 판매, 참으로 긴 이틀이었다’로 마감하는 창업 가이드는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왜 하필 이틀인가? 창업이라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준비하는 시간으론 지나치게 짧다. 데드라인 설정이 실행을 자극하기 때문인가?

“시간이 길어지면 두려움만 깊어진다(웃음). 이제까지 대학과 많은 창업 박람회에서 강연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성공한 창업가들도 충분히 만났고, 자금도 마련했지만, 막상 시작은 못한다.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주말 이틀 동안, 큰돈 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다면, 창업바라기들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두 달도 아니고 단 이틀이라면(웃음).”

SK행복나눔 재단의 기부 관련 행사로 한국을 방문한 프레이저 도허티. 그는 매년 100회 이상 노인들을 위해 티파티를 열어주는 자선 행사를 열고 있다.

-어떻게 이틀 만에 창업이 가능한가?

“실제로 나는 48시간 실행 매뉴얼대로 오트밀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의 관심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게 시작하면 된다. ‘빠르게 작게 일단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농산물 직판장에 가든, 전화기를 집어 들든, 가가호호 무작정 방문을 하든 창피해할 필요가 없다. 비결은 특별하고 완벽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이다. 수십만 원 정도 투자해서 몇몇 고객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보라. 반응이 시큰둥하면 계획을 수정하면 된다. 남들과 조금 더 다르거나 싸거나 빠르면 성공한다.”

나는 그가 왜 그토록 창업을 독려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48시간 창업 프로젝트’야말로 ‘100세 시대, 인생 3모작, 기승전치킨집'이라는 불안한 사이클에서 벗어나는 묘책이기 때문일까. 몸의 경험보다 머리로 기승전결을 그려보는 데 익숙한 겁 많고 게으른 나 같은 사람도 이 ‘창업 천재’의 프로세스를 따라 할 수 있을까. 아니 꼭 따라 해야 할까.

어쩌면 그의 ‘창업 전도'는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을 쓴 전 도쿄대 교수 강상중의 말처럼 ‘올인하지 말라, 다양한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라’라는 조언과 맞닿을 때 합당한 울림을 준다. 다양한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살려면 이 세계와 접촉해야 한다. 그 접점은 봉사일 수도, 취미 클럽일 수도 있다.

그는 자유와 모험을 누리기 위해 창업이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사업은 실패하면 온 집안이 박살 나는 일이 결코 아니며, 두려움을 깨고 이 세상에 조금씩 자기 스테이지를 만들어가는 일일 뿐이라고.

-누가 그런 창업 마인드를 일깨웠나?

“부모님이다. 그런데 사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해본 적도 없으신 분들이었다. 그저 항상 ‘네가 좋아한다면 해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아침을 맞는 게 성공이다'라고 가르치셨다. 그분들은 나에게 ‘무엇을 해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자신들의 삶을 무척 좋아했다. 아버지는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회계원이셨다.”

그는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하려던 천재 과학자 에디슨의 어린 시절과 가히 비견할만한 유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레이저 도허티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열정과 호기심이 넘쳤던 소년은 8살에 케이크를 구워 선생님에게 팔았다. 10살 무렵, 농가에서 달걀 한 바구니를 얻어다 흥분해서 부모에게 설명했다. “달걀을 부화시켜서 시장에 내다 팔 거예요!”

‘나는 돈이 없어도 사업을 한다'. 아이디어 구상부터 제품 포장지 결정, 홈페이지 만들기, 디자이너 섭외, 판매까지 사업을 시작하는 전 과정에 대한 노하우가 담겨 있다.

놀랍게도 3주 만에 병아리가 부화했다. “부모님은 내 열정에 제동을 건 적이 없었다. 케이블 TV가 따뜻해서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공감해주셨고, 병아리가 부화했을 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셨다.” 얼마 뒤 닭은 알을 낳았고 소년은 이웃들에게 달걀을 팔아 이윤을 남겼다. 미래의 백만장자는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을 그때 얻었다고 했다. “시도해 보지 않고서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없다. 부모님께서 내게 가르쳐주신 가장 큰 교훈이었다.”

두 번째 교훈을 가르쳐준 사람은 일명 ‘베이컨 보스'였다. 그는 소년 도허티가 만난 첫 번째 창업가였다. 그는 10대 소년들이 이웃을 방문해 베이컨을 팔도록 한 뒤 수수료를 지급했다. 베이컨 보스는 고객을 재방문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연락하지 않으면 고객은 돌아선다는 게 베이컨 보스의 신조였다.

책에서 그는 ‘베이컨 보이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수천 곳의 문을 두드려야 하며 그것도 끝까지 한결같은 열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라고 썼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면 방향을 조금 틀어서 다시 시도하는 것은 창업가에게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 창업가의 길은 셀 수 없이 많은 거절의 연속이며 이따금 어렵게 판매에 성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10대 아이에 불과했지만, 그저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벨을 누르고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는 일만으로도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라고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기질이 남다르다. 창업 방면에서는 영재 아닌가?

“아니다(웃음). 베이컨 보이 시절을 겪으면서 나도 내 아이템으로 보스가 되어 이윤을 창출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친구들도 평범하지 않은 나를 재미있어했다. 생각이 창업에 가 있으니, 할머니 부엌에서 끓고 있는 잼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던 거다. 같은 반 친구들도 내 잼 판매를 도와주었다(웃음).”

열 네살에 ‘베이컨 보이'에서 ‘잼 보이'로 일대 전환이 이뤄졌다. 처음 12병이 팔리던 것이 30병이 되고 40병이 됐다. 아버지는 새벽 5시 과일 시장에 가서 재료를 구해 오고, 좁은 부엌에서 그가 팔팔 잼을 끓이면 동생과 어머니는 쪼그리고 앉아 포장했다.

그는 ‘사업’을 하면 돈과 시간에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린 창업가는 스코틀랜드 전역의 생산자직거래장터를 돌았다. 우연히 영국의 대형 유통기업 웨이트로즈의 바이어와 만날 기회를 잡은 날, 그는 아빠 양복을 빌려 입고 나갔다. 바이어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제대로 공급하려면 브랜드를 구축하고 생산설비를 개척하라고 퇴짜를 놓았다. 1년 여의 시간 후 생산 공장을 찾은 시점에서 오케이를 받았다.

그 뒤 슈퍼잼은 테스코, 월마트 등으로 뻗어 나갔으며 마침내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서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전시되었다.

-달걀 장수, 베이컨 보이 그리고 잼 사업가로의 변신... 모두 십 대에 당신이 거친 길이다. 당신이 상대한 선생, 이웃, 보스, 할머니 등등 모두 당신의 고객 아니면 멘토였다.

“맞다. 내가 응석받이가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른들과 교류한 건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나를 독립적으로 인정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패할 때 느끼는 고통보다 시도할 때 느끼는 행복이 더 크다는 걸 몸으로 깨우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뼈아프게 느껴지는 실패가 있나?

“5년 전 노인을 위한 건강식을 판매하려고 준비했는데 실패했다. 고객이 인터넷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막판에 좋은 레스토랑의 자리를 예약하는 앱도 개발했는데 본전도 못 건졌다(웃음). 가장 큰 좌절은 10대 시절, 1년 동안 잼 라벨이나 생산 방법을 연구했는데 슈퍼마켓에서 판매 불가 결정을 받았을 때다.

하지만 그 혹평이 나를 제대로 된 사업가로 만들었다. 유치한 슈퍼맨 그림 대신 프레시한 과일 라벨을 붙이고 레시피도 수정했다. 그래서 사업 아이디어가 생기면 항상 낙관주의자 한 명과 비관주의자 한 명의 구체적인 조언을 들어야 한다.”

슈퍼잼은 과육이 씹히는 기분 좋은 단 맛을 낸다.사진=성형주 기자

-학업은 어디까지 마쳤나?

“잼 사업을 하느라 고등학교 때 중퇴했다. 그 이후 시험으로 고교 과정을 완료했고, 1년 후 다시 대학에 갔다. 1년 정도 공부하다 사업이 성장해서 그만두었다. 최근에 다시 MBA 과정을 시작했다. 나는 학창 시절 친구보다 창업가 클럽에서 만난 친구들이 더 많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즐겁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이 안정된 직업을 갖길 바라며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에 매달린다. 앨빈 토플러는 이를 일컬어 ‘한국인들은 미래에 쓸모없어질 지식을 배우고 있다’고도 일갈했고. 당신 스토리를 들으면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회의마저 든다. 어떻게 생각하나?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 라고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학업이든 창업이든 열정과 재미를 느끼는 일을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부모와 스승이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강요해서도 안 되고 아이도 어른들에게 의지할 생각은 일찍부터 좀 덜어내야 한다. 작더라도 창업을 통해 머릿속 아이디어가 현실화되고, 세상과 접촉하다 보면 삶의 이치를 깨닫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레모네이드 한 잔을 팔기 위해서라도 아홉 번 열 번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 첫 시도가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러나 결국은 팔아 줄 ‘누군가’가 나타난다는 것. 나는 그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베이컨 바구니를 들고 다니면서 열두 살에 배웠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열두 살에 반 친구들을 대상으로 프로야구 스티커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아본 적이 있는 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모를 수 있지만 커갈수록 그 진가를 깨닫게 된다. 그게 얼마나 멋진 경험이었는가를! 그래서 부모 역할이 소중하다. 아이가 무언가를 하려 할 때 독려해주어야 한다. 물론 창업과 학업은 병행할 수 있다. 내가 48시간 창업 프로젝트에 관한 책을 쓴 것도 직장이나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주말 이틀 동안 이 일을 해내길 바래서다.”

에든버러에 살며 런던에서 사업을 하는 프레이저 도허티. 한국에서는 홍대의 힙한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잼이나 커피, 맥주 등 먹거리 사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해서다. 열정을 갖고 오래 일하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야 한다. 커피도 마음이 맞는 친구와 콜롬비아 농가를 방문해서 좋은 원두 공급처를 찾아냈다. 인터넷 맥주 사업도 구상한 후 바로 양조장을 찾아내 공급 의사가 있는지 전화부터 돌렸다. 그런 공정을 매우 즐겁게 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최적의 여행 장소로 캘리포니아나 뉴욕을 예로 들었는데.

“미국이든 영국이든 일본이든 어디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여러 장소에 가보고 성공적인 제품을 경험해보면 열정이 생길 것이다. 내 사업의 경우엔 캘리포니아가 건강식과 크래프트 커피, 크래프트 비어를 선도하고 있어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킨 기업의 많은 사례가 미국에서 왔다. 미국의 창업 정신과 디자인 시스템, 유행을 모방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실리콘밸리는 창업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최근엔 과장된 크라우드 펀딩, 독선적 CEO, 먹고 노는데 시간과 돈을 탕진하는 문제적 스타트업 등이 내부 고발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실리콘밸리는 세상을 바꾸는 공격적인 투자가 많은 곳이다. 나는 당신이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걸 권한다(웃음). 대출이나 투자 등을 받지 않고 재미를 느끼며 작은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 몇 번을 강조하지만 리스크가 크지 않아야 한다.”

-내 경우엔 우리 집 할머니의 호박죽이 맛있어서 이걸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 그릇 씩 담아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시식을 하게 한 후 반응을 볼까 하는데… 다음 스텝은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사업의 기본 규칙은 똑같다. 제품 이름을 정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웹사이트를 예쁘게 꾸며라. 동네 슈퍼마켓이나 장터를 뚫어 제품 소개하고 고객 반응을 살펴라.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그다음부터 개선점을 찾으면 된다.”

-만약 한국에서 창업한다면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

“한국은 정말 역동적이고 흥겨운 곳이다. 나라면 온라인 수제 맥주 공급 사업을 하겠다(웃음).”

낙천적인 용기로 충만한 청년 사업가의 발걸음이 씩씩하다. 한국에서 사업한다면 온라인 수제 맥주 사업을 하겠다고.

-사업의 시작과 중간 끝에 이르기까지 당신 이야기에는 할머니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심지어 할머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 아이디어를 폐기하라고까지 했다.

“할머니는 내게 좋은 영감을 주는 친구다. 나는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실행 방식이 구체적이어도 항상 할머니 테스트를 거쳤다. 할머니의 이해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 반대다. 오트밀 사업을 할 때도 할머니에게 차를 마시며 설명드렸다. 할머니는 아이디어가 좋다며 바나나 오트밀 레시피도 알려주셨다. ‘멋지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성공의 예감이 온다.”

할머니는 그가 어릴 적부터 잼과 스콘을 만들어 요양 시설에서 있는 지역 노인을 방문했다. 할머니는 신념에 따라 봉사를 했고 그 일은 젊은 백만장자 프레이저 도허티에게로 그대로 이어졌다. 도허티는 그간 100여회에 걸쳐 노인 티파티 행사를 열었다.

“수백 명의 노인들이 근사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벅차오른다”고 그가 홍조를 띤 채 말했다. “호기심이 많고 문제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사업을 했는데, 사업도 결국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었다"고.

-다시 한번 묻지만 왜 그토록 창업을 권유하나?

“창업하면 세계에 기여하면서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작게 시작하면 최상은 성공이고 최악은 교훈이다. 부딪혀봐야 한다. 여행도 하고 친구도 사귀면서 시행착오도 겪는 게 인생이지 않나.”

-마지막으로 열 여섯 살의 소년 도허티를 다시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한참을 생각하다)슈퍼잼이 슈퍼마켓이 진열된 첫날, 나도 1.49파운드를 주고 네 잼 한 병을 샀지. 내 인생에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어. 많이 실수했지만 네가 거침없이 실수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고맙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주어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창업이라는 행위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절박한 투신이 아니라, 이 세계를 굴리는 행복한 엔진에 나의 소박한 엔진을 더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잼과 커피와 맥주가 좋아서 시작한 도허티의 창업 스토리는 눈부신 ‘성공신화’ 보다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따뜻한 동화, 실현 가능한 판타지, 도처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담처럼 들렸다.

젊은 청년이 유행가의 후렴구처럼 반복한 말은 “두려워하지 말아라, 작게 시작하라"였다. 그런데 그 말은 ‘수시로 자신을 낯선 곳에 세워두고 잠재력을 끌어올리라'던 영미 행동경제학자들과 동기부여 대가들의 잠언이 아니던가.

참, 고등학교를 중퇴했던 프레이저 도허티는 현재 런던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역사상 최연소 객원교수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