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귀순 병사 치료 과정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현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내년도 중증외상 전문진료체계 구축 사업 예산이 40여억원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8년 예산안 중 중증외상진료체계 구축 사업 예산은 400억4000만원이다. 이는 올해 예산 439억6000만원보다 39억2000만원(8.9%) 삭감된 금액이다. 기재부는 주무부처인 복지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복지부가 당초 요구한 예산보다 10.3% 줄였다.

국회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내년 예산은 예산결산위원회로 바로 넘어가게 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됐어야 하지만 아동수당·기초연금 등 문재인 정부의 대표 공약 집행 예산을 두고 여야가 의견이 엇갈리면서 예산 심의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이 삭감된 것은 지난해 예산에서 다 쓰지 못한 예산이 100억여원에 달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영주 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2016년 외상센터 예산 중에서 다 쓰지 못한 불용(不用) 예산이 있다 보니 예산 당국과 내년 예산 협의 과정에서 삭감됐다"고 말했다.

2016년 예산 불용액은 101억5200만원이었다. 2016년도 중증 외상 전문진료체계 구축 사업 예산 438억7000만원 가운데 4분의 1 가까이가 사용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불용액 중 40억원은 당초 경남 권역외상센터 설치비용으로 책정됐지만 신청자가 없어 무산되면서 발생했다. 현재 경남 지역에서 올해 추가로 공모를 실시한 결과 경상대학교병원 한 곳이 신청서를 제출해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나머지 61억5200만원은 대부분 중증외상센터 전담 전문의 인건비로 지원하려고 했던 예산이다. 정부는 증중외상센터 전담 전문의 1명당 숙련도에 따라 연간 최대 1억2000만원, 센터당 23명분까지 인건비를 지원하지만 센터들이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인력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증외상센터는 1곳당 최소한 전담 전문의를 20명 둬야 하지만 올해 상반기 현재 상당수 센터가 최소 인력에 미달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외상외과 의사가 너무 힘들어서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센터장이 지난 22일 "지금 (환자) 150명이 있는 중증외상센터는 100병상뿐"이라며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상황을 밝힌 이후 중증외상센터 현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증외상 분야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 지원 방안 마련을 요구한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24일 기준으로 18만명이 넘어섰다. 이 센터장과 권역외상센터 지원을 늘리자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보건복지부가 외상센터 정책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군 귀순 병사 치료 과정에서 벌어진 논란을 계기로 중증외상센터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진료 수가, 진료비 지급 기준, 예산 등에서 개선할 필요성이 있는 게 뭔지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