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 사이버사령부 정치 개입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지난 11일 구속됐다가 22일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 전 장관을 구속한 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나아가려던 검찰 수사가 일정 부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유죄 입증엔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도 법원의 석방 사유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법원은 김 전 장관 석방을 결정하면서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이 있고,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없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은 ①범죄 혐의 소명 ②도주 우려 ③증거인멸 우려를 피의자 구속 사유로 정하고 있다. 사실상 김 전 장관을 구속할 사유가 하나도 없다고 밝힌 것이다. 검찰로선 뼈아픈 내용이다.
법원은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이 있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상 범죄 혐의 소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구속의 첫째 조건부터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김 전 장관의 가장 주요한 혐의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여당 승리를 위해 군 사이버사령부에 '정치 댓글 공작'을 지시해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군 형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적부심사 재판부는 '위법한 지시'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김 전 장관이 매일 받아본 사이버사령부 보고서 표지에 했다는 'V' 표시였다. 사이버사령부의 구체적 활동을 나열한 보고서에 V 표시를 했으니 이를 승인·지시한 게 입증된다는 것이다. 이에 김 전 장관 측은 "V 표시는 '봤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사이버사령부가 작성한 댓글이 70만개가 넘는데 이 중 문제가 된 것은 8600개로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며 "개략적인 활동 계획만 적힌 보고서를 받아 보는 김 전 장관이 70만개 중 문제가 된 8600개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겠느냐"고도 했다. 재판부는 이런 상황에선 범죄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소명이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구속적부심사에서는 군인 신분이 아닌 김 전 장관에게 군 형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공방이 오갔다. 변호인단은 국방장관이 군인이 아닌 공무원 신분이라 군 형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이 부분도 법리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2012년 사이버사령부 군무원 79명을 증편할 때, 군무원은 1등급 신원 조사 대상자가 아닌데도 기무사령부에 1등급 조사를 지시한 것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우리 편 사람'을 뽑기 위해 절차를 멋대로 바꿨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부당하게 지시한 경우 성립된다. 이에 대해 김 전 장관 측은 "기무사령부는 원래 신원 조사를 하는 곳"이라며 "사이버전(戰)에 적합한 군무원을 뽑으면서 신원 조사를 철저하게 하라고 한 것은 장관이 할 수 있는 권한 범위 내 지시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이 '호남 출신은 뽑지 마라'고 지시한 혐의에 대해서는 "김 전 장관이 호남 출신인데 그런 지시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직권남용 혐의는 범죄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재판부가 이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듯하다"고 했다.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와 관련해 검찰은 김 전 장관을 풀어줄 경우 신변을 비관해 자살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고, 증거를 없앨 염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김 전 장관이 한평생 명예를 중시하는 군인으로 일했는데 그럴 우려는 없다"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변호인 주장이 더 사리에 맞는다고 봤다.
김 전 장관이 석방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하던 검찰 수사는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공작에 개입한 의혹이 있고, 공모 여부 수사를 위해서도 김 전 장관 구속이 필요하다고 해왔다. 그러나 법원이 김 전 장관 혐의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함에 따라 보완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일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김 전 장관 석방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에는 구속적부심사 재판장인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를 비난하는 글 수천 개가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그를 '적폐'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국정 농단 수사가 시작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어김없이 영장심사를 맡은 판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