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서울시의원들의 통행 편의를 위해 단 5일간 도로를 새로 깔았다가 다시 뒤엎은 것으로 22일 밝혀졌다. 시의원들에게 '아스팔트 카펫'을 깔아주려다 시민을 위한 공사 일정이 미뤄지고 적지 않은 인력과 혈세가 낭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가 된 곳은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중구 성공회성당과 시의회 건물 사이 옛 국세청 별관 터에 조성하는 '세종대로 역사문화 특화공간' 공사 구간이다. 시의회 건물을 끼고 성공회성당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인 세종대로 21길이다. 시는 지난 2015년 옛 국세청 별관 건물을 헐고 지상(1088㎡)에 시민을 위한 역사문화광장을, 지하에 서울의 도시·건축의 발전 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박물관을 지하 3층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4월 완공 예정으로 총사업비는 340억원이다.

시는 지난 9월 시의회 건물로 진입하는 폭 5m, 길이 30m의 도로를 부수고 흙막이 공사를 시작했다. 지하 3층 깊이까지 땅을 파기 전에 흙이 붕괴하는 것을 막아두려는 기초 공사다. 시는 시의회 옆 도로를 막고, 공사 현장인 옛 국세청 별관 터를 빙 둘러 임시 도로를 만들었다. 시의회 앞 도로를 이용하던 시민들은 65m를 더 내려가 우회전해 임시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한 바퀴를 돌아가야 해서 이동 거리가 공사 전 30m에서 약 180m로 늘어난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16일 통제돼온 시의회 옆 도로에 전에 없던 아스팔트 길이 생겼다. 이날은 시의회 제277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가 시작한 날이었다. 본회의는 20일까지 열렸다.

시 관계자는 "일부 시의원들의 민원이 빗발쳐 급하게 길을 만들었다"고 22일 밝혔다. 시의원들이 "본회의 기간만이라도 도로를 개통해 달라"고 요구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시의원 측에서는 "도로·주차장 이용이 불편해진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시의회 주차장은 의회 건물 뒤편 성공회성당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다. 공사 동안은 우회로를 이용해야 들어갈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시의원 측에서 '서울시장이 지나다니는 앞마당이 파헤쳐 있어도 가만히 둘 거냐'며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말했다. 시의회 관계자는 "연중 가장 바쁜 기간이라 의원들이 우회로를 이용할 시간이 없어 민원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는 시의원들을 위한 특수 도로 공사에 적지 않은 비용을 들였다. 도로를 만드는 데 17.6t의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이 들어갔다. 아스콘은 t당 5만원이다. 시 관계자는 본지의 첫 문의에 "공사비는 1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정확한 수치를 요구하자 "총 88만원"이라며 말을 바꿨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인건비, 가림막 설치·철거비를 고려하면 의원들의 '등원용 특수 도로'에 들어간 비용은 이를 훨씬 상회한다.

특수 도로는 공기(工期)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이미 예정된 공사 기간보다 한 달가량 공사가 지연된 상황이었다. 지하를 파보니 예상보다 많은 하수도관, 통신망 등이 발견돼 일일이 옮기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5일 동안 등원용 도로를 깔아두느라 해당 구간 공사가 중단돼 일정은 더 뒤로 밀렸다.

시는 만들었던 임시 도로를 시의회 본회의가 끝나자마자 부쉈다. 지난 21일부터 해당 구간은 다시 통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