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소수의 독자들이 좋아한다. 미국 독자들을 만난 자리에선 '내 소설이 한국 여성의 현실을 사진 찍듯이 보여주진 않지만, 그 속에서 내 나름대로 여성의 욕망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설명하곤 했다."
요즘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 배수아(52)가 신작 소설집 '뱀과 물'(문학동네)을 냈다. 1993년 등단한 뒤 국내에서도 독특한 미학을 인정받은 그녀의 소설책 중 세 권이 이미 영어로 번역됐다. 현지 비평가들 사이에선 '한국에서 가장 실험적인 포스트모던 작가'로 꼽힌다.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장편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들'을 각각 'A Greater Music'과 'Recitation'이란 제목으로 옮겨서 출간했고, 곧 네 번째 소설 'North Station(원제: 올빼미의 없음)'이 나올 예정이다.
올해 초 서평지 '뉴욕 저널 오브 북스'는 배수아 소설 'Recitation'을 가리켜 "철학적 여담(餘談)이 빈번한 관념 소설"이라고 규정한 뒤 "이 소설 덕분에 영어권의 배수아 독자와 다른 포스트모던 소설 팬들은 그녀의 소설이 더 많이 영어로 출간되기를 열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배수아 소설을 두고 미국 서평지에선 대부분 '관습을 깨는 작가'라거나 '반(反)서사' 혹은 '비(非)소설'이라며 호기심을 갖는다. 작가는 "한국에선 비평가들이 내 소설을 두고 '서사가 약하다'고 비판했는데, 미국에선 그것 때문에 칭찬받나 보다"라며 웃었다.
배수아 소설의 열쇠말은 '언어, 소리, 육체, 꿈'이라고 한다. 그녀는 "성대(聲帶) 해부도는 여성 생식기 해부도와 비슷하다"며 "제 소설에서 여성적 자아의 음성은 여성의 육체성과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신작 소설집 '뱀과 물'은 기이한 '환상 소설' 모음이다. 단편 7편으로 꾸며졌지만 전반적으로 신화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녀는 "이 소설집은 주로 여섯 살 이전 '어린 시절'을 다뤘다"며 "어릴 때 내 꿈엔 뱀과 물이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뱀과 물은 모두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폭력을 암시한다. 그녀는 "뱀과 물의 이미지는 불안의 원형(原型) 상징이기도 한데, 내 소설에선 피학적이면서도 가학적이고 싶다는 아이의 욕망을 반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에게 세상은 모두 신비스럽고 무섭기 때문에 아무래도 소설 분위기가 신화적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나는 그것을 강력하게 상징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섯 살 이전의 어린 시절은 인간 역사에서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와 같으니, 그런 아이의 시선으로 소설로 쓰고 싶었다"는 것.
소설집에 실린 단편 '1979'의 화자(話者)는 "모든 기억은 망상"이라며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이라고 했다. 책 제목이 된 단편 '뱀과 물'도 '소녀가 맑은 물인 줄 알고 마신 한 잔 술에 취해 꾸는 꿈'의 비유를 기반으로 시간이 중첩된 환상을 펼치기도 한다.
배수아는 독학으로 독일어를 익힌 뒤 독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번역가의 입장에서 본 자신의 소설 영역본에 대해 "내 단편 '양의 첫눈'에서 '첫눈'은 '첫눈에 반하다'와 '첫눈이 내린다'는 뜻을 다 지니고 있는데, 데버러 스미스가 그 제목을 'First Sight, First Snow'라고 너무 센스 있게 옮겼더라"고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