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한 군 병사 한 명이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를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었다. 이 병사의 치료 과정서 몸에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발견돼 큰 화제가 됐다.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기생충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어떤 존재이고, 감염되면 어떤 피해가 있을까. 그동안 무지했던 장내 기생충들에 대해 알아봤다. (관련 기사 더 보기▶ "JSA 귀순병사, 기생충에 내장 오염돼 합병증 우려")

'기생충 왕국'으로 불렸던 그 때 그 시절

1963년 10월 24일, 전북 완주군의 아홉 살 난 소녀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보채 병원으로 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장이 배배 꼬여있었고, 수술 결과 장에서 나온 회충만 1063마리였다. 체중 20kg인 소녀의 몸에서 나온 회충의 무게가 총 5kg이었다. 이 소녀는 결국 장폐색으로 숨졌다. (관련기사 더 보기▶ 광복후 한국은 '결핵 공화국'… 9세 少女 몸엔 1063마리 기생충도)

1950년대 후반 보건소 차량이 농촌을 순회하면서 결핵 검진을 하는 모습. 당시 결핵 환자는 50만명에 육박했지만 병상은 3000여개에 불과했다.

위 사건은 당시 여러 신문에 보도된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1950~1970년대에는 '기생충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생충 문제가 심각했었다. 지금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당시에는 이처럼 기생충에 감염돼 숨지는 사람이 한 해에 2000명이 넘었었다.

1965년엔 대한기생충 박멸학회와 외국 민간원조기관(KAVA)이 공동으로 전국에서 2만여 명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한 바 있다. 국민 81.5%가 회충·십이지장 충 등의 기생충에 감염돼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정부는 1966년 4월에는 기생충질환예방법을 제정하고, 학교에서 연 2회 학생의 기생충 감염 여부를 검사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채변 봉투'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정부는 약 5년 단위로 기생충 감염률을 발표했는데 1971년 84.3%, 1976년 63.2%, 1981년 41.1%, 1986년 12.9%로 꾸준히 낮아졌다.

1990년대에 들어 기생충 감염률이 3% 안팎까지 떨어지자, 정부는 년마다 해오던 실태조사를 중단했다. 하지만 유기농 식품의 섭취 증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 증가 등으로 기생충 감염 위험 요소가 늘어나자 '전국민 장내 기생충 감염 실태조사'도 다시 부활했다. 2013년 제8차 조사에서는 2.6%가 나왔다.

최근의 결과로 보면, 회충·구충·편충과 같은 토양 매개성 선충이 주를 이룬 과거와 달리 간흡충과 요코가와흡충 감염률이 높아졌다. 민물고기를 날로 먹는 식습관 때문인데, 이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장내 기생충은 거의 박멸된 상태라고 한다. (관련 기사 더 보기▶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46] 기생충과 문화 수준)

기생충은 입으로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그래픽=이은경

어떤 생물체가 다른 종의 생물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면서 서로 이득을 보면 공생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쪽만 이득을 취하는 경우엔 이득을 보는 생물체가 기생충, 손해를 보는 생물체가 숙주가 된다.

숙주는 크게 종숙주와 중간숙주로 나눌 수 있다. 다 자란 성충이 기생하는 숙주가 종숙주, 유충이 기생하는 숙주는 중간숙주다. 사람은 기생충 대부분의 종숙주가 되지만 예외도 있다. 만손열두조충이라는 기생충은 개나 고양이의 몸 안에서는 성충으로 자랄 수 있지만, 사람의 몸에서는 성충이 될 가능성이 극히 작다.

기생충은 소장이나 대장 같은 곳에 있는 게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심장·간·폐·혈액 등 인체의 어느 조직 기관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몸 밖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기생충이 벼룩이나 빈대다.

기생충은 숙주에 어떻게 침입할까. 그 방법에는 매개체의 유무에 따라 간접 전파와 직전 전파가 있다. 간접 전파 방법은 흙·물·채소와 과실 및 동물 등이 매개체가 돼 몸 안으로 침입하는 것이다. 직접 전파 방법은 입·피부·혈액·모체 감염·기타의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회충, 요충, 편충 등의 기생충 알은 대부분은 입을 통해 감염된다. 구충은 피부를 통해 몸 안으로 침입하고, 사상충이나 파동편모충 등은 모기나 흡혈성 파리 등의 매개 곤충에 의해 주입돼 성충으로 자란다.

말라리아와 같은 기생충은 수혈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 또 임신한 모체에 말라리아나 톡소포자충과 같은 기생충이 감염되면서 태아에게도 감염시키기도 한다. 이외에는 호흡기나 비뇨생식기, 결막 등을 통해서도 몸 안으로 기생충이 침입할 수 있다.

먹는 것에 따라, 몸 안으로 들어오는 기생충도 달라진다

그래픽=이은경

기생충을 구분하는 방법은 기생부위에 따르거나 기생 기간에 따르거나 숙주의 병원성 유무에 따라서 분류할 수도 있다. 쉽게는 채소류와 육류 그리고 어패류처럼 감염원에 따라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관련 기사 더 보기▶ 어떤 음식물이 어떤 기생충 감염을 일으킬까?)

감염원: 채소류
채소류에서 발견될 수 있는 기생충으로는 회충·구충·편충·요충 등이 있다. 기생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회충은 농경을 시작했던 선사시대부터 널리 분포했다. 회충의 알에 오염된 물·흙·채소 등을 먹거나 이런 것을 만진 손이 입에 닿으면 감염된다. 입을 통해 소장에 도달한 회충은 장벽을 뚫고 간, 심장, 폐까지 이동한다. 성충의 길이는 보통 수컷은 15~25cm, 암컷은 20~35cm이며 흰색이나 분홍색을 띈다.

몸속에 회충의 수가 적을 때는 별 증상이 없다. 개체수가 많아지면 몸속에서 여러 마리가 뭉쳐 큰 덩어리로 서식하다 장폐색을 일으키기도 한다. 장폐색에 걸리면 극심한 복통이 생기거나 적은 양의 물설사를 할 수도 있고, 아예 대변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구충은 처음에 십이지장에서 발견돼 십이지장충이라고 불렸다가 원래의 기생 부위가 십이지장에 이어지는 작은 창자의 일부여서 지금은 구충이라고 불린다. 구충은 입 부분에 이빨과 같은 흡착기로 숙주의 장점막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인체에 기생하는 구충은 몸 길이가 보통 1cm 정도다. 침입 부위에 작열감, 홍반, 수포 등을 일으킨다. 구충에 감염되면 채독증이 나타나고 빈혈이 생기는 수도 있다.

편충은 사람의 맹장에 기생한다. 몸길이는 3~5cm 내외이며, 몸 앞부분을 숙주의 장점막 안에 깊이 박고 흡혈한다. 기생 기간은 대략 4~6년이며 여러 개의 개체가 기생하면 빈혈, 설사, 복통, 충수염을 일으킬 수 있다.

요충의 성충은 맹장과 결장의 상부에 기생한다. 몸길이는 수놈이 2~5mm, 암놈은 8~12mm이다. 사람이 밤에 잘 때 암놈이 항문 밖으로 기어나와 항문 주위와 회음 등에 산란한다. 이 때문에 심한 가려움증이 일며, 자는 동안 손으로 항문 주위를 긁게 돼 피부염이나 습진이 생기기도 한다.

감염원: 육류
소나 돼지 등 육류를 섭취하며 생기는 기생충에는 무구조충·유구조충·선모충·톡소포자충이 있다. 사람 소장에 기생하는 무구조충은 쇠고기나 육회 등을 먹어 감염된다. 민촌충이라고도 하며 사람만이 유일한 종숙주다. 전체 길이는 12m에 달할 수 있으며, 엉켜서 실타래 같은 형태를 만든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증상이 없고, 무구조충이 스스로 항문으로 기어 나올 때 이물감, 항문소양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뭉치게 되면 장폐색을 초래할 수도 있다.

유구조충은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을 때 감염된다. 머리 부위에 26개의 갈고리가 있어 갈고리촌충이라고도 하며 보통 2~3m 정도까지 자란다. 돼지를 유일한 중간숙주로, 사람을 유일한 종숙주로 삼는다. 하지만 돼지가 위생적으로 만든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서 유구조충이 급격히 감소해 지금은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감염 증상은 배가 좀 아프거나 설사가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이 자체만으로는 유구조충의 존재를 알 수는 없다.

선모충은 돼지·개·쥐 등의 포유동물과 사람 간에 감염되는 인축공통기생충이다. 사람은 감염된 돼지고기를 충분히 익히지 않고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다. 감염 초기에는 메스꺼움, 설사, 복부 경련 증상이 있다. 보름쯤 지나면 선모충 유충들이 근육으로 침투해 근육통, 발열, 눈 주변 얼굴의 부기 등이 나타난다. 유충이 많이 존재하면 심장, 뇌, 폐 등에도 염증이 생길 수 있다. 감염 후 3개월이 지나면 증상이 사라지고 공존이 시작된다. 선포충의 유충은 사람 몸에서 40년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톡소포자충은 중간숙주가 사람·돼지·조류·쥐·개·소 등이고 종숙주가 고양이인 인수공통기생충이다. 사람은 고양이의 분변을 통한 직접 감염이나, 덜 익힌 닭 등의 섭취를 통해 감염된다. 증상이 거의 없을 수 있지만, 신생아나 임신부, 면역 결핍 환자 등의 경우엔 심한 증상이 초래될 수 있다.

감염원: 어패류 및 양서·파충류
폐흡충은 종숙주가 사람·호랑이·늑대·여우·오소리·개·고양이 등인 인수공통기생충이다. 사람은 덜 익힌 참가재, 참게즙 또는 가재즙을 먹어서 감염된다. 오한과 미열을 유발하고, 급성 감염 시에는 전신쇠약, 심한 기침, 객혈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간흡충 감염은 폐흡충 감염과 더불어 강유역에서 많이 발생하는 풍토병이다. 간흡충은 자연산 민물고기를 먹을 때 주로 감염된다. 평소 증상이 심하지 않아 대부분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감염 초기에 담관염이 발생해 발열과 복통이 있지만 일시적이며, 특별한 치료 없이 회복된다. 감염이 지속 되면 소화장애, 설사 등의 증세가 나타나다가 합병증으로 간경화, 담관암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유극악구충은 종숙주가 고양이·개 등이며 사람은 2차 중간숙주에 속한다. 가물치, 메기, 뱀장어, 잉어 등을 날로 먹어서 인체에 감염된다. 사람이 종숙주가 아니기 때문에 몸속에서 성충으로 자라지는 못하고, 유충 그대로 피하조직이나 피부에 머무르며 악구충증을 일으킨다. 악구충증 초기에는 2~3주 동안 상복 부통, 오심, 구토 등의 소화기 증상이 나타난다. 이후에는 어떤 장기로 이동했느냐에 따라 신경근척수뇌염, 시력상실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니사키스는 포유류(돌고래, 바다표범, 고래)의 위에 기생하는 회충이다. 사람이 아니사키스에 감염된 대구, 고등어, 가다랭이, 청어 등의 해산어 등을 날것으로 먹으면 감염된다. 사람 위의 점막을 파고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감염자는 상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구토를 일으킨다. 사람은 종숙주가 아니기 때문에 침입한 유충은 얼마 후에 사멸한다.

이밖에 개구리나 뱀등의 양서·파충류를 통해 감염될 수 있는 기생충으로 만손열두조충이 있다. 사람은 종숙주가 아니라서 유충이 성충으로 성장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스파르가눔'이라고 불리는 2차 형태의 유충은 악명이 높다.

주로 개구리나 뱀을 날 것으로 먹어서 감염되는데, 몸 안으로 들어온 스파르가눔은 장 벽을 뚫고 나가 전신을 돌아다닌다. 피부에 가면 염증과 통증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증상을 일으키지만, 뇌로 가면 간질·발작·혼수 상태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고, 고환으로 가면 고환을 들어내는 수도 있다. 다만, 인체에 감염되는 사례는 극히 희귀하다.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밝혀진 사례는 100건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생충이 우리 몸 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면…

기생충이 우리 몸 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소개한 다섯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중요도나 순서는 상관 없음)

외출 후 집에 돌아왔을 때나, 식사 전에는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는다. 밖에서 기생충이 있는 흙이나 농작물을 만졌을 수도 있고, 기생충 감염자가 만졌던 문고리나 여러 물건 등을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생선은 오래 지날수록 기생충이 늘어나기 때문에, 회로 먹을 경우에는 신선한 생선으로 내장을 제거하고 먹는다. 생선을 얼렸다가 회로 먹을 경우에는, 20도 이하에서 24시간 이상 냉동했다가 먹는다.

회충 감염을 예방하려면 채소를 깨끗하게 씻어 먹는 게 중요하다. 웰빙 열풍 이후 유기농 채소의 섭취가 늘어났는데, 유기농 채소는 안전하다는 생각에 제대로 씻지 않고 먹어 기생충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늘었다. 주말 농장 등을 통해 직접 채소를 길러 먹는 사람들도 '내가 길러서 깨끗하다'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씻지 않고 먹어 기생충에 감염 될 위험이 높다.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서 기생충의 알이 떨어져 나갈 수 있도록 한다.

우리나라는 민물고기를 회로 먹는 식습관이 있는데, 민물고기는 가능하면 완전히 익혀서 먹는 게 좋다. 회를 즐겨먹는 사람은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도록 한다.

소고기는 표면만 익히면 기생충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부패하기 쉬운 여름에는 구입 후 빨리 먹는 게 좋다. 반면, 돼지나 닭은 충분히 익혀서 먹는 게 안전하다. 고기를 조리할 때는 주변 위생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생닭을 씻을 때 물이 튀면서 주변 식재료를 오염 시킬 수 있고, 돼지고기도 조리하는 과정에서 쓴 도마나 칼 등의 주방용품 등이 오염되며 몸 안으로 기생충이 침입할 수 있다.

반려동물이 기생충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에게도 옮을 수 있으므로 신경을 써줘야 한다. 반려동물에게도 정기적으로 구충제를 먹일 수 있도록 한다.

구충제를 1년에 1~2회 복용한다. 구충제 한 알로 모든 기생충을 없앨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기생충은 죽는다. 단, 임부나 수유부는 구충제를 먹지 않도록 하며 간질 환자는 의료진과 상담 후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다. 기생충 감염이 의심된다면 병원에 가서 확인하도록 한다.

기생충 O,X 퀴즈

기생충이 죽을 정도의 알코올 농도면 사람의 식도도 같이 상한다.

질편모충은 성병으로 분류되는 기생충이며, 성관계로만 감염된다. 에이즈 감염률까지 높이는 이 기생충은 남성의 몸에서는 열흘도 못 견디지만, 여성의 몸에서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살며 피해를 입힌다.

간디스토마 같은 흡충류와 갈고리촌충 같은 조충류는 프라지콴텔이라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귀에서 기생충이 나왔다고 하는 환자가 몇 있지만, 실제로 귀에 서식하는 기생충은 없다. 건강염려증처럼 기생충에 대한 공포심을 가진 사람들이 호소하는 증상이다.

회충 열마리가 먹어봤자 밥 한 톨이다.살이 안 찌는 건 체질이거나 갑상선기능항진증 같은 다른 이유가 있다.

모든 물고기가 고래회충에 감염돼 있다. 아직까지 안 걸린 물고기는 본 적이 없다.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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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본부(KCDC)
-2014년 장내기생충 감염 실태조사 결과 분석(주간 건강과 질병, 제9권 제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