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지면 두고 갈 것 생각 못하고/ 만져보고 펼쳐보고 둘러만 보고"―박은옥 '양단 몇 마름'
시름을 잠시 잊고 볕바른 날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집올 때 가져온 양단 몇 마름"을 꺼내 본다. 이 귀하고 예쁜 것, 그저 "만져만 보고 펼쳐만 보고 둘러만 본다". 그것만으로도 좋아 마음에 윤기가 돈다. 신산한 삶의 주름이 잠시 펴지는 시간, 어머니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퍼진다. 좋고 아름다운 것은 나중에 누리리라 생각하나, 그 나중은 결코 오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희망의 문 앞을 기웃거리다 엉거주춤 끝나기 마련이다. 내일로 유예한 욕망은 몸과 함께 금세 시들고, 생은 가엽게 저문다.
박은옥이 부른 '양단 몇 마름'은 우리 시대 어머니들을 위한 엘레지다. 양단을 앞에 두고 설레던 새색시는 풍파에 떠밀려 어머니가 되어간다. 그사이 "옷장 속 깊이깊이 모셔둔" 양단도 바래고 세월도 바랜다.
사치는 꿈도 못 꾸던 궁핍한 시절, 어머니들은 종교적 금욕을 내면화해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가끔 좋은 것이 생기면 자식 입히고 먹이고, 나머지 거친 것들만 자신의 것으로 취했다. 양단은 있되 없는 '그림 속 물건'이었다. "생각나면 꺼내서 만져만" 보고 "석삼년이 가도록" 마음에만 둘 뿐이었다. 저 석삼년은 지난 시대 도덕과 제도가 강압한, 슬픈 폭력적 시간이다. 시집가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이라 주문하던, 여성들의 욕망을 단단히 단속한 바로 그 시간이다. 그 삼 년이 지나면 해방이 아니라, 다른 얼굴을 한 삼 년이 다시 온다. 그러다 하릴없이 늙어간다.
어머니의 생애는 영원히 삼 년이 반복되는 운명에 갇혀, 주저하고 망설이고 자책하고 한탄하다 꿈처럼 지난다. 그 질곡에 묶인 채, 어머니의 삶은 누군가를 위해 통째로 바쳐졌다. 시대의 제의가 아프고 슬프다. 노래가 끝내 누선(淚腺)을 건드리는 마지막 대목. "늙어지면 두고 갈 것 생각 못하고/ 만져보고 펼쳐보고 둘러만 보고". 순정한 욕망이 시간 속에서 박제되는 이 가슴 먹먹한 광경 앞에서, 평생 남루를 자처한 모든 어머니를 위해 굵은 눈물 한 줄기를 바쳐야 하리라.
정태춘이 음악 활동 초기에 만든 이 노래는 박은옥 2집(1980년)에 수록됐다. 정태춘이 묵직한 목소리로 직접 부른 것도 좋지만, 박은옥의 청아한 목소리로 빚어내는 슬픔이 노래에 더 잘 어울린다. 박은옥은 1980년대 여성 포크의 계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이다. 배우자 정태춘의 그늘에 오랫동안 가려왔지만, 슬픔을 깊게 끌어들인 듯한 그의 맑은 목소리는 한국 포크사에서 각별하다.
이 노래는 전형적 트로트 작법에 따른 것이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다. 오히려 가사의 문학성이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장르는 무죄다. 트로트가 '서민 음악'이라는 이유로, 한국 음악계가 그간 얼마나 퇴행적 결과물들을 쏟아내 왔던가. 서민은 '후진' 음악을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후진' 생각들이 트로트를 망쳐왔다.
정태춘은 트로트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애써왔다. 문제작 '92년 장마, 종로에서'에 수록된 '나 살던 고향'의 날 선 사회비판도 트로트를 빌렸다. 2012년 발표한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 실린 '섬진강 박시인'도 트로트지만 가사는 한 편의 시다. "누옥의 처마 풍경 소리는 청보리밭 떠나고"와 같은 멋진 문장들이 구성진 가락을 타고 넘는다. 정태춘의 작가주의적 태도를 만나 트로트가 비로소 품격을 얻었다.
어머니, 다음 생에선 화사한 양단 옷에 꽃신 신고 잃어버린 새색시의 봄을 오래오래 거니세요. 따뜻한 봄빛에 어머니 볼이 붉게 물들면, 그 옆에서 제 마음도 환하게 부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