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산하기관인 국방정신전력원이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을 앞두고 호국 정신을 이어가자는 의미로 '순국선열' 또는 '애국지사'로 사행시 짓기 행사를 열었다.

13일부터 오는 21일까지 공식 블로그 댓글을 통해 응모 글을 받고, 우수 작품을 낸 20명을 뽑아 상품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주최 의도와 달리 국방 비리와 사병의 열악한 처우 등을 꼬집는 내용의 사행시가 줄지어 올라오면서 국방정신전력원 블로그는 국방부 비판의 장이 됐다. '순전히 자기들을 위해/국가라고는 안중에도 없이/선거가 다가오면/열심히 충성하는 국방부'라고 사행시를 올리는 식이다.

행사가 시작된 13일 오전만 해도 '순전히/국가와 국민을 위해/선을 행한/열정을 본받자'같이 진지한 내용의 사행시들이 올라왔다. 이날 오후부터 엠엘비파크 등 회원이 수백만명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행사가 알려지면서 군을 비판하는 시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4행시 이벤트 참사' '국방부 디스전(상대방을 공격하는 내용의 랩 대결)'이라며 다른 사람이 지은 시를 스크린 샷으로 찍어 공유하고 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국방정신전력원 블로그의 이틀간 방문자는 7000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200명 남짓한 방문객이 수십 배로 증가한 것이다.

14일 오후까지 국방정신전역원 블로그에는 480여개의 사행시가 달렸는데, 국방부를 비판하는 것은 절반이 넘는다. 이 중에는 최근 이슈가 된 공관병 갑질 사건이나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공작을 비판하는 것도 있다. '애들도 아니고/국민이 바보인 줄 아나?/지금 이런 이벤트 열면/사람들이 원하는 사행시 써줄 것 같나' '애들을 불러다가/국가를 위한 일이라며/지네집 하인처럼 부려놓고/사과의 한마디조차 하지 않네' '애끓는 마음으로/국가가 부른다/지금 당장/사이버전사령부로' 등이다. 지난 8월에는 사단장 부부가 공관병을 종처럼 부리며 골프공 줍기, 텃밭 농사 등을 시켰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정치 댓글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돼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다.

국방정신전력원은 "이번 행사를 개최하면서 주로 복무 중인 군 장병들이 참여할 것이라 예상했다"며 "네티즌들의 관심에 놀랐지만 예정대로 이벤트를 진행한 후 우수 응모자를 뽑아 선물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군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면서도 "네티즌들이 순국선열을 기리는 행사라는 것을 잊고 과도하게 국방부를 비판하는 시를 올리는 것도 문제"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