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각) 오후 2시 40분 중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영접을 받았다. 양 국무위원은 최근 19차 당 대회에서 25명의 정치국원에 올라 외교 부총리 승진이 유력하다.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중(訪中) 때 왕이 외교부장을 보냈던 중국은 그보다 윗선인 양 국무위원을 보내 의전의 격을 높였다.
전날까지 나흘간 스모그 경보가 지속됐던 베이징은 이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는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어김없이 공기가 좋아진다. 이번엔 '트럼프 블루'가 찾아왔다"라는 촌평이 잇따랐다.
취임 후 처음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명·청대 황궁이었던 자금성(紫禁城)으로 직행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만났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위해 하루 8만명이 찾는 자금성을 이날 하루 통째 휴관했다. 두 정상 내외는 과거 23만 점의 궁내 보물을 보관했던 보온루(寶蘊樓)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시 주석이 지난 4월 미국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했을 당시 뜨거운 환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태블릿 PC에 담아온 외손녀 아라벨라(6)의 동영상을 시 주석 내외에게 보여줬다. 이방카의 딸인 아라벨라는 중국어 노래를 부르고 삼자경(三字經)과 한시를 암송했다. 시 주석은 "중국어 실력이 A+"라며 "아라벨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랑이자 미·중 우호의 작은 천사"라고 했다.
두 정상 내외는 이어 자금성의 중심이자 가장 웅장한 궁전인 태화·중화·보화전을 관람하며 황제가 걷던 길을 함께 걸었다. 중국 CCTV는 "시 주석이 자금성의 역사와 건축, 문화를 직접 소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전했다. 고궁문물병원에서 복원 작업을 거친 시계와 도자기, 서화 등을 감상한 이들은 황제를 위한 공연장이었던 창음각(暢音閣)에서 손오공을 주제로 한 '미후왕(美
王)' 등 세 편의 경극을 관람했다. 두 정상 내외는 이후 건복궁(建福宮)에서 만찬연을 가진 뒤 이곳에서 약 200m 떨어진 삼희당(三希堂)에서 티타임을 끝으로 4시간에 걸친 자금성 일정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복궁은 무려 60년을 재위하며 청나라의 절정기를 이끈 건륭제가 휴식 장소로 애용했던 곳이고, 삼희당은 왕희지의 글씨 등 건륭제가 아꼈던 작품들을 소장했던 곳으로 서재를 겸한 공간이었다.
이날 중국 관영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맞은 중국의 의전이 '국빈 방문+(플러스)급'임을 종일 강조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외국 정상이 자금성에서 만찬을 한 것은 1949년 신중국 건국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금성에서 황제급 의전을 받는 동안 중국은 미국에 큼직한 선물보따리를 안겼다. 중국 왕양 부총리와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명식에서 생명과학·항공·스마트제조업 등 19개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90억달러(약 10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경협안에 사인한 것이다. 왕 부총리는 "이건 워밍업일 뿐 내일 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둥(京東·JD)닷컴도 이날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포함한 20억달러(2조2300억원)어치의 미국 제품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북핵과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핵심 의제로 정상회담을 갖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이징 도착 전 에어포스 원에서 가진 기내 회견에서 "시 주석에게 북한과의 금융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했다. 반면 시 주석은 자금성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긍정적인 성과를 얻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