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자살한 가수 김광석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지난 9월 불거졌다. 8월 30일 김씨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개봉하면서다. 인터넷 언론 고발뉴스 대표이자 영화 '김광석'의 감독인 이상호씨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김씨가 아내 서해순(52)씨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다. 딸도 서씨가 죽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9월 20일엔 고발뉴스가 "미국에 있다던 김씨의 딸이 10년 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김씨 딸 사망' 보도 다음 날인 9월 21일 오전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상호씨, 김씨 친가 측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에 '김씨 딸 사망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장을 냈다. 같은 날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행정안전위 국정감사 전체회의에서 "긴급 현안 질의"라며 이철성 경찰청장에게 김씨 딸 사망과 관련한 얘기를 꺼냈다. 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이틀 만인 9월 23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재수사를 지시했다. 그 사이 화제를 끌어모은 영화 '김광석'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약 1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경찰 '혐의 없음' 결론 내릴 듯
김씨 딸 사망 사건을 둘러싼 경찰의 수사 결과가 이르면 이번 주에 발표된다. 서해순씨를 유기치사·소송사기 혐의로 수사해 온 경찰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6일 "소아과·내과·흉부외과 전문의 여러 명에게 김씨 딸의 부검 감정서 등을 보냈다"며 "내과 전문의 2명으로부터 '가부키 증후군을 앓은 상태에서 급성 폐렴에 걸리면 면역력이 약해져 일반인보다 진행 속도가 빠를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서씨 딸은 생전에 정신 지체와 신체 기형을 유발하는 희소병인 '가부키 증후군'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흉부외과 전문의 1명도 '면역 체계가 약한 사람은 폐렴이 급속도로 번져 급사할 수도 있다'고 답변했다"고 했다.
전직 기자이자 감독이 앞장서고 현직 의원이 가세하고 검찰 고발이 이뤄지고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된 사안이 결국 '카더라'만 무성한 의혹 제기로 끝나게 된 것이다. 두 달간 인터넷이 특정 집단의 여론몰이에 휩쓸려 간 결과다.
◇두 달간 '딸 살해한 엄마'로 몰아가
지금도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씨를 '살인자'로 매도하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김씨 딸 사인이 급성 폐렴인데 제초제 살인 사건이 연상되네요. 찌개나 차에 제초제를 묽게 타 넣으면 폐렴 증세로 사망합니다' 하는 등의 내용이다. 김씨의 친가 측은 "서씨가 일부러 119에 늦게 신고해 딸을 사망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보통 급성 폐렴으로 사망하면 숨지기 5∼6시간 전부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거나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나 병원 기록 등에 따르면 김씨 딸은 119 신고 후 10여 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 때문에 "딸이 방치돼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 "물리적으로 학대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김씨 딸의 부검 감정서를 본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김씨 딸이 타살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김씨 딸이 숨졌을 당시 부검을 한 법의관들은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약·독물 검사를 했다. 그런데 디하이드로코데인, 메틸에페드린 등 기침 감기약 성분만 발견됐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일반 사람들은 폐렴과 감기를 구분하기 어려워 119 신고가 지체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물리적 학대가 있었다면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서씨는 김씨의 형이 제기한 저작권 소송 사기 혐의도 벗을 가능성이 높다. 김씨의 형은 '서씨가 딸의 죽음을 일부러 감춰 2008년 저작권 소송에서 승소했다'며 서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200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양측이 조정으로 합의했을 당시 원고 측인 김광석씨 형이 조정 신청을 먼저 했다"고 밝혔다. 서씨가 딸의 지분 등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조정 신청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또 딸이 사망했을 경우 저작권에 대한 상속권은 엄마인 서씨에게 있기 때문에 서씨가 일부러 딸의 사망을 숨길 이유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