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소설 중 기억에 남은 건 '감자'나 '배따라기'가 아니라 '광염 소나타'였다. 불우한 청년 작곡가 백성수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방화를 한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장면이 숨겨져 있던 그의 광기와 천재성을 이끌어내고, 백성수는 즉석에서 소나타 선율을 만들어 미친 듯이 피아노를 친다. 그는 계속 범죄를 저지르면서 작곡을 하고, 급기야는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를 옹호하는 작중 평론가 K는 말한다. "사람은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80년대 MBC 베스트셀러극장은 명작의 산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김내성 원작 '악마파'는 충격적이었다. 악마적인 화풍을 추구하는 두 명의 화가 유인촌과 조경환은 황신혜를 두고 다투는 연적 관계였다. 유약한 유인촌은 거친 조경환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모욕당한 뒤 사라진다. 진정한 악마는 누구였을까. 마지막에 절벽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황신혜를 싸늘히 내려다보며 그림을 그려대는 유인촌. 거기서 '빈사의 마리아'라는 걸작이 탄생하지만, 그 그림은 황신혜의 목숨을 대가로 치른 거였다.
이 픽션들과 비슷한 사건이 현실에 있다면 어떨까. 1983년 배관공이자 사진작가인 이동식은 이발소에서 일하던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사진 모델로 삼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산 중턱으로 여성을 데리고 간 이동식은 여성을 속여 청산가리 캡슐을 먹였다. 여성은 그 자리에 쓰러져 목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갔고, 이동식은 그 장면을 21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예술 사진을 찍은 것이다. 이런 것을 늘 동경해왔다" 고 범인은 말했다. 하지만 사진을 본 사람들은 범죄 현장 검증 사진인 줄 알았다고 했다.
앞의 두 작품과 대비하는 것조차 미안할 만큼 이 범죄는 역겨움만을 일으킨다. 판타지가 현실로 구현됐을 때는 전혀 다른 게 되고 만다.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겨 두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