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기자

최근 사회 각계 수많은 전문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토론력과 협업력을 갖춘 인재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수학을 도구 삼아 지능정보화 사회에 발생할 각종 사회문제를 타인과 함께 해결하는 능력은 미래 인재의 자질로 첫손에 꼽힌다. 전 세계 초등 영재들이 수학(數學) 실력을 겨루는 세계수학올림피아드(World Mathematical Olympiad·이하 WMO)가 '창의적 수학 토론대회(Creative Math Debating Festival·이하 CMDF)'를 본선 무대에 올린 이유도 바로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토론하는 수학, 수학적 의사소통, 놀이로서 수학'을 모토로 한 WMO의 2017 CMDF 한국 본선 현장을 찾았다.

◇'12대1' 예선 통과한 실력자들, 머리 맞대

지난달 29일(일) 오전 9시 서울대 체육관 앞마당. 초등 3~6학년 학생 324명과 학부모들은 쌀쌀한 바람에 옷자락을 여미며 체육관으로 뛰어들어갔다. 초겨울 같은 싸늘한 바깥 공기와 달리, 체육관 안은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지난 9월 전국 13개 시도에서 치른 '2017 WMO 한국 예선(전국 창의융합수학능력 인증시험·지필고사)'을 통과한 학생들은 '12대1'의 경쟁을 뚫고 본선에 들었다.

본선 진출자들은 현장에서 학년별 3인 1조를 무작위로 배정받았다. 처음엔 어색했던지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수학 얘기가 한창이다. "난 계산은 자신 있어!" "오늘, 우리 마음껏 수학 문제 풀고 가자" 등 체육관 여기저기에서 수학에 대한 이야기꽃이 만개한 가운데 한국 본선의 막이 올랐다.

1차 관문은 수학토론(Math Debating). '웅성웅성' 체육관을 가득 채웠던 학생들의 말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조원들은 주어진 토론 과제에 관해 저마다 해법을 모아 발표지에 요약했다. 발표지는 심사위원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풀이 과정과 결과를 간결하고 상세하게 기술하는 게 관건이다. 이렇게 제출된 발표문의 배점은 240점, 토론에 배정된 총배점의 60%에 달하는 '비중 있는' 시험이다.

교내 식당에서 점심을 마친 학생들은 12시 30분부터 2차 시험에 돌입했다. 조별로 게임을 하듯 6개 관문의 수학 문제를 차례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우주선이 모든 행성을 한 번씩만 거쳐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도록 줄을 연결하는 '스페이스 트래블(Space Travel)' ▲양탄자를 올려 땅과 황금을 차지하는 대결 게임 '스프레드 어 카펫(Spread a Carpet)' ▲한 명씩 뛰어가 문제를 풀고 다음 조원에게 차례를 넘기는 '매스 릴레이(Math Relay)' ▲수학토론 발표 대결 등 흡사 보드게임을 연상시키는 퍼즐 문제부터 생활에 친숙한 놀이를 접목한 수학 문제가 즐비했다. 이 6가지 수학게임의 경우 대결은 학년별로 하지만, 3~6학년 모두 비슷한 유형과 난도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관문마다 심사위원은 학생 개인별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평가하는데, 곳곳에 '비밀 감독관'이 숨어서 한 번 더 평가한다.

◇'팀워크상' 권위 높여 7개 조 선발

WMO의 한국 본선 CMDF가 올해부터 확 달라진 게 있다면 '팀워크상'의 권위를 크게 높인 것이다. 수학 관문별 심사위원과 비밀 감독관은 승패 혹은 정답과 관계없이 슬기롭게 잘 '협업'한 조원들에게 배지를 달아줬다. 감독관은 문제를 푸는 도중에도 갑자기 나타나 배지를 달아줬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기분 좋게 문제를 풀었다. 6가지 수학 관문이 끝나갈 무렵, 배지를 한 개도 못 받은 조가 있는가 하면, 예닐곱 개를 단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이는 조원들 사이에 문제 풀이 능력의 편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도입한 평가 방식이다. 현장에서 WMO 관계자는 "조원을 무시하고 '나 홀로' 문제를 푸는 학생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반면, 자기주장만 고집하지 않고 늘 다른 조원과 상의하면서 더 나은 답안을 찾아가는 참가자에게 배지를 달아준다"고 설명했다.

6가지 수학게임을 하면서 총 7개의 배지를 얻어 '팀워크상'을 받은 황희원(광주 일신초 6)양은 "틀에 박힌 문제 풀이가 아니라 협동하면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가는 방식은 수학을 더 깊이 고민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가 매우 어려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반진성(성남 수내초 5)군도 배지를 6개나 받았다. 반군은 "문제가 어려워 함께 논의했기에 풀 수 있었지, 혼자 했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며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달라도 정답을 찾아가려는 목표는 모두 같아서 배지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팀워크상'을 수상한 7개 조의 21명은 '드론'을 부상으로 받았다.

한국 본선 최고상인 '금상' 수상자 가운데 성적 우수자(1차 지필고사 합산) 10여명은 세계대회(WMO World Final) 출전권을 얻는다. 이날 금상은 ▲3학년 문서준(화성 동탄중앙초)·송재인(서울 우촌초)·이성현(용인 독정초) ▲4학년 박상명(서울 원촌초)·박찬용(평택 반지초)·이서빈(서울 광남초) ▲5학년 김선웅(인천 명선초)·윤세현(고양 오마초)·홍예찬(서울 대도초) ▲6학년 김재현(부산 명륜초)·김정원(인천 원동초)·정우진(용인 언동초) 학생이 수상했다.

금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한 이서빈군은 "지난해엔 떨려서 문제를 못 풀었는데 올해는 경험 덕분에 떨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조원들 간 호흡이 잘 맞아 더 편안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조의 박상명군은 "매스 릴레이에서 실수한 게 마음에 걸렸는데 최고 상을 받아 얼떨떨하다"며 "집에서 오답 문제를 많이 풀었던 게 좋은 결과로 돌아온 것 같다"고 귀띔했다. '2018 세계수학올림피아드'는 내년 8월 미국에서 열리며 한국·중국 등 10개국 1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