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전 축구 대표팀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38세 이동국이 대표로 뛰는 게 한국 축구의 문제라고 했다. 이동국은 은퇴할 때까지 후배들과 실력으로 경쟁하면서 국가대표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제 K리그 영웅을 아름답게 보내줘야 한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이동국이 골을 못 넣고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영웅을 한 명 잃을 수 있다." 지난달 30일 신태용 축구 대표팀 감독은 이날 발표한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동국(38·전북 현대)이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 감독은 이날 명단이 내년 러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 본선까지 바라본 선발이라고 했다. 1998년 프로 데뷔하자마자 프랑스월드컵 국가대표로 뛰었고, 전날 K리그 최초로 200골을 넣은 이동국 유니폼에서 태극마크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국가대표 이동국의 가장 최근 경기는 지난 9월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린 최종 예선 우즈베키스탄전이었다. 후반 33분 교체로 투입돼 15분을 뛰었다. 월드컵 최종 예선이 두 경기 남았을 때 이동국은 신 감독으로부터 대표팀 합류 의사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2년10개월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불혹을 앞둔 그에게 아마도 마지막일 기회였다. "정신적 지주 역할로 뽑는 거라면 대표팀에 가지 않겠습니다." 예상 외의 답변이었다. 지난 9월 전북 완주군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그 이유부터 물었다.

국가대표로 보낸 마지막 18일

"다른 종목도 비슷하겠지만 대표팀에서 베테랑 선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어린 후배 선수들 기강을 잡는 것이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들어가 그런 임무를 맡는 건 원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따지면 그건 코치님들 역할이기도 하고요. 제가 대표팀 경기력을 위해 꼭 필요한 카드라면 언제든 가겠지만 운동장 밖에서의 역할을 기대하신다면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신 감독님도 그런 역할로 뽑는 게 아니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바로 합류를 결정했습니까.

"전화 끊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왜 하필 이런 불구덩이 같은 상황이 돼서야 기회가 오나 싶었습니다(이동국이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조 2위였던 대한민국은 3위 우즈베키스탄과 승점 차가 1점에 불과했다). 잘못해서 총알받이가 되느냐, 아니면 소방수가 되느냐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내가 조언을 해줬습니다. 결과에 따라 후회는 할 수 있지만 뭐든지 도전은 해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요. 그동안 욕을 한두 번 먹은 게 아니니까 일단 부딪혀 보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대표팀에서는 어땠습니까.

"막상 대표팀에 가보니 후배 선수들에게 독려를 안 할 수 없더라고요. 월드컵에 못 나갈 수도 있다는 중압감이 너무 컸습니다. 농담 삼아 유서 한 장씩 쓰고 원정 경기 가자고 이야기했죠. 대신 너무 부담감을 가질까 봐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로 뽑혔으니까 항상 책임감과 자부심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습니다. 본선 티켓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본선 진출은 확정했지만 아쉬운 결과였는데요.

"결과적으로 본선은 확정했지만 만족스러운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팬들이 바라던 시원한 승리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도 그려 왔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대표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혼자 많이 했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지요."

시간 되돌린다면…2006년 독일로

이동국은 열아홉 살이던 1998년부터 국가대표 유니폼을 모두 입어본 유일한 선수다. 청소년·올림픽·A대표(성인대표)팀을 오가며 경기를 뛰었다. 이제 그는 대표팀에서 코치보다 나이 많은 최고참 선수다. 그 20년 동안 월드컵이 다섯 번 열렸다. 대표팀 붙박이였지만 유독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A매치 통산 105경기 33골을 넣었어도 월드컵은 두 대회에 나가 세 경기 고작 51분을 뛰었고 골은 없었다. 2002년과 2014년 월드컵 본선에서는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은 대회 두 달 전 십자인대 파열로 낙마했다. 출전했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1무2패 탈락, 16강에 올랐던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선 결정적인 일대일 기회를 놓쳤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그냥 하루하루가 신기했습니다. 1990년에 새벽 방송으로 이탈리아월드컵을 처음 봤고, 1994년 미국월드컵 땐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랬는데 4년 만에 월드컵 대표가 됐다는 게 스스로 믿기지 않았죠. 축구공에 바람 넣고, 선배들 짐 챙기고, 심부름하고…. TV에서만 보던 선수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첫 월드컵 경기는 어땠습니까.

"5대0으로 졌던 네덜란드전 중거리 슈팅을 많이들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때는 팀 막내여서 뭘 짊어지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없었습니다. 거의 네덜란드 홈경기 같았는데, '어차피 이 사람들은 날 모르는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뛰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 뒤 월드컵은 순탄하지 않았는데요.

"2002년에는 정신적으로 부족한 게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대표팀 탈락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죠. 경기 중계는 보지도 않았습니다. 함께 뛰었던 팀인데 제대로 응원도 못했습니다. 많이 어렸습니다."

―독일월드컵은 부상으로 못 뛰었죠.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입니다. 4년 동안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2002년에 왜 탈락했는지 많이 생각했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매우 좋은 상태였습니다. 부상은 생각도 못했는데 한순간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대회 전까지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수술을 받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4년 준비한 대회를 못 나가게 됐는데도요.

"지금 생각해도 제 축구 인생 중에 가장 기량이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경기에 나가면 언제든 한 골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죠. 복귀까지 6개월 넘게 걸린다는 의사 진단을 듣고 나니 '왜 사람들이 후회 없이 준비하면 결과가 어떻든 웃을 수 있다'고 말하는지 이해됐습니다. 다치지 않고 결과까지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컨디션으로 뛰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그래도 2002 월드컵 탈락하고 독일월드컵 준비했던 시간이 선수 생활에 좋은 약이 됐습니다."

이동국이라서 20년 먹은 욕, 이제 뿌듯해

절치부심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우루과이와의 16강전. 1대2로 뒤진 후반 42분 박지성의 스루패스로 일대일 기회를 잡은 그가 슛했다. 골키퍼 가랑이 사이를 통과한 공은 골대 안으로 향하나 싶더니 물 먹은 잔디 때문에 힘을 잃었다. 이동국은 그 슛 하나로 또다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대표팀 귀국 환영식에서 이동국은 '내가 생각했던 마무리가 아니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저도 제가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왜 나만 욕을 많이 먹어야 하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독 저를 평가하는 잣대만 더 가혹한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제 플레이 하나 때문에 가족까지도 좋지 않은 소리를 듣게 되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욕을 20년 먹으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이동국이라면 저 정도는 넣어줘야지. 한 방이 있잖아' 하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동국이라는 스트라이커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더 아쉬워하고 화를 내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20년 동안 저보다 욕을 많이 먹은 선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20년 동안 기대받는 공격수로 뛴 선수도 없겠더라고요. 지금은 욕도 좋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다시 빠졌는데요.

"어릴 때는 대표팀에 가서 하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선발로 나가서 결승골을 넣고, 스타가 되고, 해외 진출도 노려보고…. 대표팀 경기로 제 실력을 입증하고, 몸값도 올리고 싶었죠. 지금 어린 선수들도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은퇴를 앞둔 나이가 되니 욕심이 사라졌습니다. 이번에 이란전에 교체로 투입되는데 팬들 함성과 박수 소리를 들으니 소름이 돋고 전율이 흐르더라고요. 그 순간이 잊히지 않습니다. 팀에서 계속 좋은 결과를 보이면 희박하더라도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후배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실력에서 밀리면 물러날 생각입니다."

스트라이커는 골대 근처에서 패스를 받아 마무리 짓는 포지션이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마무리'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다. 국가대표로 뛰며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아쉬움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축구 선수로서 그는 어떤 마무리를 생각하고 있을까. "무대는 중요하지 않아요. 대표팀이든 소속 팀에서든 선수로 뛰는 마지막까지 박수받으면서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