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기차로 2시간 반. 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5분만 걸어가면 산기슭을 따라 대형 스키점프대가 보인다. 노르웨이 동계스포츠 메카인 인구 2만8000여 명 소도시 릴레함메르다. 규모와 입지가 평창과 닮아 '쌍둥이 도시'라고 부를 법한 이곳은 199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다.

릴레함메르 올림픽은 동계올림픽 사상 흔치 않은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여전히 사후 활용 계획이 불투명한 평창 시설물과 달리, 이곳 올림픽 유산(legacy)은 여름철엔 관광지로, 겨울철엔 각국 국가대표팀의 전지훈련지로 쓰이고 있다. 도시는 이런 올림픽 시설 덕에 젊음과 활기를 찾았다.

릴레함메르시는 올림픽 시설을 재활용해 1년 중 200일 정도 크고 작은 이벤트를 연다. 올림픽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음악 콘서트를 개최한 모습(큰 사진). 건물 공간 일부를 떼어 지역 주민들을 위한 건강 증진 시설(오른쪽 아래)로 쓴다. 스키점프대 밑 공터에서는‘자동차 아이스하키’경기(오른쪽 위)를 열기도 했다.

올림픽 당시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렸던 다목적 경기장에선 지역 주민들을 위한 벼룩시장이 열렸다. 주민들 수백 명이 중고 제품을 고르고 있었다. 릴레함메르는 스키점프대, 다목적 홀, 봅슬레이 썰매 트랙 등의 올림픽 시설을 운영해 지난해 약 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활용되지 않고 연간 수십, 수백억원씩 잡아먹는 '돈 먹는 하마'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대회 전부터 철저히 '사후 활용 계획'을 마련한 결과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개막 전 운영 예산 중 일부(약 233억원)를 떼어내 '레거시 펀드(기금)'를 설립했고, 대회가 끝나자마자 전문가들로 구성된 올림픽 시설관리공단을 세워 운영을 맡겼다. 올림픽 이후 필요한 시설 유지·보수비의 안정적인 재원(財源)을 사전에 마련하고, 이 돈으로 시설을 운영하게 한 것이다.

평창도 지금까지는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만 몰두했지만, 지금부터라도 대회 개최와 사후 활용 계획을 같이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50명 안팎의 관리공단 직원들은 매년 전 세계 기업·단체와 함께 릴레함메르에서 1년에 200일 정도 크고 작은 이벤트를 연다. 예컨대 스키점프대 밑 공터를 활용해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차 발표회를 연다. 점프대 아래 공터에 눈을 깔아놓고 자동차를 탄 채로 대형 타이어를 굴려 골대에 집어넣는 '자동차 아이스하키' 이벤트도 열렸다. 릴레함메르를 찾는 관광객은 1994년 10여 만명에서 2017년 35만명으로 늘었다. 인구 3만도 안 되는 소도시가 10배 넘는 관광객을 수용하는 것이다.

'관광도시'라는 도시 이미지가 생기면서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 기반도 생겼다. 올림픽 전후로 스윅스(Swix)라는 기업이 본사를 오슬로에서 릴레함메르로 옮겼다. 스키 하단에 붙여 마찰력을 줄이는 탄소섬유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세계 1위' 강소기업이다. 릴레함메르대학도 올림픽 이후 커리큘럼을 확장하면서 전교생 숫자가 700명에서 5000명으로 7배 이상 늘어났다. 체육대학도 신설됐다. 시설관리공단 에릭 울라타이그 이사장은 "관광 레저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근 지역에 별장이 6000개 이상 늘었다. 관광객과 부유한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릴레함메르에 돈과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올림픽을 치르기 전까진 젊은이들의 유출로 경제가 무너지면서 활기를 잃은 산골 마을에 지금은 활기가 넘친다. 릴레함메르 인구는 올림픽을 치렀던 1994년 2만4000여 명에서 현재 2만8000여 명으로 늘었다. 0~5세 이하 어린이도 소폭 늘었고, 30세 이하 인구로 범위를 넓히면 1000명이 증가했다. 무너져 가는 촌동네가 '아기 울음소리' 들리는 젊은 도시로 변한 것이다.

계속되는 인구 감소로 고민하고 있는 평창이 돌이켜 볼 대목이다. 평창은 20~39세 여성의 숫자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34%에 불과해, '소멸 위험 지역'으로 구분돼 있다. 이대로라면 30년 내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스 린달 시설관리공단 CEO는 "올림픽 이전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여기서 미래를 꾸려가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린달 CEO는 "평창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이 기사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