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 빈센트’는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한 실사 영상(위 사진)을 밑그림 삼아 그 위에 유화(아래 사진)를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사진은 고흐와 친했던 ‘뱃사공’ 역의 에이단 터너.

귀 자른 고흐가 입원한 요양원이 있는 생 레미. 사이프러스 나무 위로 밤하늘의 별들이 소용돌이친다. 남프랑스 아를에선 밤의 카페 테라스가 흔들리는 빛을 따라 일렁이고, 고흐가 말년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노랑 밀밭 위로 까마귀가 날아오른다.

오는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러빙 빈센트'(감독 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는 독특한 유화(油畵) 애니메이션 영화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첫손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그림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같은 날 '후기 인상파 회화의 대표자'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여성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1876~1907)의 삶을 다룬 '파울라'(감독 크리스찬 슈뵈초프)도 개봉한다. 가을 스크린에 찾아온 인상파다.

◇유화 6만장으로 그린 '러빙 빈센트'

'러빙 빈센트'는, 살아 움직이는 고흐의 작품 속 인물을 목격하는 예외적 경험이다. 최면에 걸린 듯하달까. 고흐 그림이 대형 화면을 채우고, 꿈틀대는 에너지가 객석으로 흘러 넘친다.

먼저 흥미를 끄는 건 제작 과정. 코비엘라 감독은 고흐 열혈 팬이다. 2년여 동안 120여 명의 화가와 함께 6만5000여 장의 유화를 그렸고, 95분짜리 애니메이션 영화로 완성했다. 실사 촬영 영상을 유화의 밑그림처럼 썼는데, 시얼샤 로넌, 제롬 플린, 더글러스 부스 등 영국의 낯익은 연기파 배우들이 '마르그리트' '가셰 박사' '아르망 룰랭' 등 고흐의 초상화 속 인물을 직접 연기했다. 영화에 녹아든 고흐 그림은 90여 점. 개양귀비 붉은 꽃, 아몬드 나무 흰 꽃이 바람에 일렁이고 반짝일 때면, 고흐도 같은 풍경을 바라봤을지 궁금해진다.

고흐가 말년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밀밭, 편지를 전하러 왔던 ‘아르망’은 고흐가 머물렀던 의사의 집 딸 ‘마르그리트’를 만난다. 고흐의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스크린으로 옮긴 장면.

영화는 주변 인물들의 회상을 통해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간다. 우체국장의 아들 '아르망'(더글러스 부스)이 고흐에게 편지를 전하러 오베르로 간다. 하지만 고흐는 이미 죽었고, 사람들은 각자 서로 다른 고흐를 기억해낸다. 사랑, 질투, 증오, 학대의 대상이었던 생전의 고흐. '자살일까, 타살일까?' '자존심 강한 예술가였나, 절망에 몸부림치는 낙오자였나?'…. 미스터리물처럼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침내 유한한 삶 너머의 예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편견 깬 여성 화가의 삶 '파울라'

"파울라, 너는 재능이 없어. 여자는 화가가 될 수도 없고." 영화 도입부,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자의 충고를 듣던 '파울라'(카를라 유리)가 자신의 그림을 테이블에 쿵 하고 올려놓으며 말한다. "아무리 그러셔도 저는 그림을 그릴 거예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관습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엔 오히려 장난기까지 어려 있다. 영화 '파울라'는 여성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시대를 뒤흔들었던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삶을 뒤쫓는다. 그의 그림을 특징짓는 것은 세잔처럼 단순화된 화면 구성과 형태, 고갱처럼 투박하면서도 강한 원시적 감성.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과 교류했던 예술가 공동체 생활, 최초의 여성 누드 자화상을 그렸던 파리 생활, 결혼과 출산 등 31세로 요절할 때까지, 예술과 격정으로 가득한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