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플랜더스의 개’의 배경인 플랜더스는 프랑스 북부, 벨기에, 네덜란드 남부를 포함한 지역을 일컫는다. 해상 무역의 요충지였던 이곳은 중세 말부터 모직업이 발달하면서 15세기에는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5세기 플랜더스 최고의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1390~1441)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잘 보여준다. 아르놀피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으로 플랜더스에서 양모와 모피를 포함한 사치품 무역업에 종사했다. 창밖을 보니 체리 나무에 열매가 가득한 초여름인데, 부부가 모두 때아닌 모피옷 차림이다. 남자는 모피 중에서도 최고가인 흑담비털 외투를 입었고, 아내 또한 섬세한 레이스 두건을 쓰고 흰 족제비털을 두른 드레스를 입었다. 이 집에서는 지중해 연안에서 수입한 오렌지가 창가에 굴러다니고, 여느 가정이라면 테이블 위를 곱게 장식했을 동양풍 카펫이 무심하게 바닥에 깔려 있다. 이 그림의 세부는 주인공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이 집의 반려견이 자리 잡고 있다. 찰랑찰랑한 갈색 털을 늘어뜨리고 그림 밖을 쳐다보는 이 강아지는 ‘벨기에 그리펀’ 종(種)의 조상 격이다. 총명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는 벨기에 그리펀은 중세 이후로 벨기에의 귀부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독차지했던 벨기에 원산의 애완견이다. 그러니 견종(犬種) 또한 이 집안의 부와 권세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 벨기에 그리펀은 19세기 이후 교배를 통해 탄생한 개량종이 있을 뿐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그림 속 강아지는 사라지고 없다.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플랜더스의 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