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우는 덴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 하지만 TV와 각종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요즘 청소년 중에는 독서를 즐겨 하는 사례가 드물다. 읽을 책이 '권장 도서' 목록에 든 책이라면 보자마자 손사래부터 치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더구나 대입 준비에 쫓기는 고등학생은 책을 읽을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자녀가 걱정이라면 명작을 책 대신 '연극'으로 먼저 접하게 어떨까.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은 11월 19일(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20세기를 가장 잘 정의한 소설'로 꼽히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를 연극으로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영국의 차세대 극작가 겸 연출가 로버트 아이크(Robert Icke)와 던컨 맥밀런(Duncan Macmillan)이 각색한 희곡에, 대한민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 한태숙이 함께해 기대를 더한다.

1949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마지막 작품 '1984'는 '빅브러더(big brother)'의 감시 아래 모든 것이 통제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음울하고도 생생하게 담은 걸작으로 꼽힌다. 당에 의심을 품게 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를 중심으로 전체주의 체제에 반기를 든 개인의 심리와 그 최후를 냉철하게 그렸다. 이 소설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빅브러더'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이나 그러한 사회 체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소설에 예견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실현된 지금 조지 오웰의 경고는 더욱 통렬하게 다가온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는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83회 이상 CCTV에 노출되며, 개인 정보 유출이나 해킹, 도청 등이 이미 일상화됐다. 과학의 발달로 탄생한 기술 중 다수는 감시와 규제의 수단이 됐고, 정보의 비대칭성은 새로운 계급 격차를 낳았다. 올해 초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인파 집계에 대한 정부의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1984' 도서 판매량이 9000% 이상 급증하기도 했다. 자녀와 함께 연극을 관람한 후 책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 사회의 모습과 연극·책 내용을 연결 지어 대화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번 '1984'는 2013년 초연 후 지금까지 영국·미국·호주 등에서 공연되는 로버트 아이크와 던컨 맥밀런의 각색본을 바탕으로 한다. 2014년 올리비에 연극상 희곡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이 작품은 원작의 '부록' 부분을 '북클럽에 모인 사람들의 토론'으로 바꿔 원작의 묵중한 주제 의식을 다양한 시점을 넘나드는 독특한 전개로 풀어냈다.

세기의 명작을 무대화하는 이번 공연은 '세일즈맨의 죽음' '하나코' 등 작품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던 연출가 한태숙이 맡아 전체주의 체제에 의해 말살되는 인간성을 파격적으로 묘사한다. 빅브러더와 당의 통제에 저항하는 주인공 윈스턴 역에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대표 배우 이승헌, 윈스턴을 형제단으로 이끄는 내부당원 오브라이언 역에는 가슴을 울리는 진정성 있는 연기의 베테랑 배우 이문수가 캐스팅돼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중 사고'의 세계를 보여준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는 '1984'의 본고장인 영국과 달리 작품이 비교적 낯선 한국 관객을 위해 극작가 고연옥이 윤색을 맡아 작품이 던지는 질문들을 더욱 선명하게 전달한다.

이 작품은 11월 19일(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며, 티켓 가격은 2만~5만원이다. 고등학생(17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공연에 대한 문의나 티켓 예매는 홈페이지(www.ntck.or.kr)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