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교수 과학커뮤니케이션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재개를 권고한 시민참여단의 선택은 엄중했다. 471명의 시민참여단도 설득하지 못한 허술하고 선동적인 탈원전 공약으로 더 이상 국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중하고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는 냉혹한 현실도 일깨워 주었다. 실제로 국내외의 벅찬 현안이 차고 넘친다. 어설픈 탈원전 공약으로 낭비할 여유가 없다는 시민참여단의 절박한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공사 재개 이후의 조치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요구도 분명했다. 원전의 안전기준을 강화하고(33.1%),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고(27.6%),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라(25.4%)는 것이 시민참여단의 요구였다. 탈원전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3.3%뿐이었다. 사실상 아마추어적 탈원전 공약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원전 건설 축소에 대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은 시민참여단의 그런 요구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원전 건설의 축소·유지·확대를 묻는 질문은 그 자체로 국무총리 훈령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고, 그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입장은 유보적이었다. 원전 건설 축소(53.2%)와 유지·확대(45.2%)의 차이는 오차범위 7.2%를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었다. 정치적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은 부끄러운 것이다.

시민참여단의 선택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기도 했다. 2조8000억원의 혈세와 3000여 명의 일자리는 그 누구도 함부로 포기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60년 동안 국가적 노력으로 애써 이룩해놓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도 없다. 더 안전하고 깨끗한 4세대 원전 개발의 꿈을 접어버리는 것은 지속 가능한 번영에 대한 인류 사회의 기대를 외면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규 원전의 건설은 포기하면서 원전 수출은 계속하고, 원전 해체를 국가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발상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장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권고를 발표하고 있다.

위험하다고 해서 무작정 회피할 수 없는 것이 에너지 현실이다. 원전·석탄· LNG·신재생 중 어느 것도 완벽하지 못하지만 어느 것도 함부로 포기할 수 없다. 안정적 운영을 보장할 수 없는 LNG에 올인하는 에너지 정책은 비현실적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리에게 LNG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섣부른 것이다. 현재의 기술에 대한 왜곡된 평가로 60년 후의 에너지 정책에 대못질하겠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어설픈 탈원전 공약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대선 공약을 국가 정책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공약을 정책화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반영하여 더 좋은 대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공약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으로 국민을 피로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합리적 에너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향후 30년 동안 연평균 2.5%의 저성장을 감수한다는 전제에서 전기가 남아돌 것이라는 인식도 위험하기 그지없다. 적폐로 추락해버린 4대강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국가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멀쩡한 에너지 정책을 뒤흔들어놓은 신재생 마피아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탈원전 공약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이미 신고리 5·6호기의 공사에 대한 무의미한 논란으로 아까운 혈세 1000억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인구 절벽 해소와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할 예산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24일 이미 준비를 시작한 신규 원전 6기의 백지화를 포함한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했다. 여기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예산이 철철 남아도는 상황이 아니다.

공론화와 숙의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금물이다. 절차와 의사결정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법제화와 제도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한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했던 공론화 시도는 무모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그나마 시민참여단의 노력으로 최악의 재앙은 피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