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저씨! 얍삽이(꼼수를 뜻하는 은어)는 쓰지 맙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의 한 오락실. 서로 초면인 40대 남성 둘이 어깨를 맞대고 오락기 앞에 앉았다. 1980년대 유행했던 야구 게임 '신야구' 실력을 겨루기 위해서다. 플라스틱 버튼을 두드리는 소리가 커지고, 점수가 엎치락뒤치락하자 두 남자는 상기된 얼굴로 감탄사를 남발했다. 다른 손님 10여 명까지 모여들어 두 '고수'의 손놀림을 감상했다.
'콤콤오락실'이란 간판이 붙은 이곳은 1980~90년대 유행한 '갤러그'와 '스트리트파이터' '보글보글' 같은 고전 게임만 모아놓은 이른바 '복고풍 오락실'. 99㎡(약 30평) 크기의 공간이 고전 게임을 즐기러 나온 30여 명의 성인들로 가득했다. 게임 한 판에 500원. 직장인 송민정(35)씨는 "오락실에는 게임기에서 나는 특유의 '뿅뿅' 사운드나 사람들의 탄식, 환호성을 듣는 재미가 있다"며 "학창 시절 친구와 나란히 앉아 했던 게임을 다시 해보니 짜릿하다"고 했다.
오락실이 고전 게임과 함께 돌아왔다. 젊은 층과 직장인이 많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과거 유행했던 게임을 갖춘 대형 오락실이 생겨나더니, 이제는 아예 그 시절 오락실의 모습을 본뜬 곳까지 등장했다.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자취를 감췄던 오락실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 서울시에 따르면 2013년 114개였던 서울 지역 청소년 게임 제공업체 수는 지난해 513개로 늘었다.
'혼놀(혼자 놀기)'의 대표 격인 컴퓨터·스마트폰 게임에 싫증 난 이들이 사람들과 부딪치며 놀 수 있는 오락실로 향한다. 직장인 홍덕구(33)씨는 "PC방이나 집에서 하는 온라인 게임은 실제 사람과 같이 플레이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오락실 고전 게임은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 게임보다 그래픽은 떨어지지만, 상대방 표정과 반응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고 했다.
지난해 폭발적 인기를 끈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열풍의 연장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포켓몬 고는 특정 장소에 갔을 때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나는 캐릭터를 사냥하는 게임. 이재홍 한국게임학회장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반드시 어딘가로 이동하고 사람들과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포켓몬 고의 성공 요인이었다"며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타인을 만나 놀이 문화를 공유하려는 욕구가 오락실·볼링장·당구장 등 복고 놀이 열풍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카페에 불어닥친 복고 열풍…고전게임하는 카페, '레트로 카페']
복잡한 요즘 게임과 달리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단순함도 인기 요인이다. 고전 게임 300여 개를 실행할 수 있는 오락기를 집에 설치한 김석훈(38)씨는 "조작이 간단해 아내, 아이와 같이 즐긴다"며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되고, 한 번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들 염려가 없다"고 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들도 앞다퉈 매장에 오락기를 설치하고 나섰다. SPC그룹은 라그릴리아 청담점에 아예 무료로 오락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오락존'을 만들었다. SPC그룹 관계자는 "아케이드 게임은 나이·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즐길 수 있어서 고객들이 매장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오락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도 생겼다. 세운대림상가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30만~60만원대에 구할 수 있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초고화질·초고음질을 넘어 가상현실 게임과 영화까지, 압도적으로 감각적인 쾌락을 제공하는 놀이 수단에 사람들이 지치기 시작한 것"이라며 "감각이 포화되면 단순한 것에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발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