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길어진 노년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8월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법)이 호스피스 영역부터 시행되고, 내년 2월4일부터 연명의료 영역에서도 시행된다.

존엄사(연명치료 중단)와 관련된 논의가 우리 사회에 처음 제기된 것은 1997년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이 사건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부인의 요구에 의해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한 후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환자의 동생이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대법원은 부인에게는 살인죄를, 환자를 퇴원시켰던 보라매병원 의사들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의사들 사이에선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극도로 꺼리는 풍조가 생겼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 가족이 치료 중단과 퇴원을 요구해도 의사들이 이 사건을 들먹이며 요구를 거부했다. ▶더보기

이런 풍조는 2008년 '김 할머니'사건을 통해 바뀌게 된다. 이 사건은 우리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첫 사례로, 사회 각계에서 '연명치료 중단' 지침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식물인간 연명 치료' 법정에 서다

연명치료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 이상이 무리한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명 치료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어 의사들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를 놓고 의료진과 환자 가족이 갈등을 겪는 사례도 빈번했다.

이 때문에 이 법은 연명 치료로 고통을 계속 받는 대신 스스로 생을 끝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존엄사' 법으로도 불리운다. 이 법의 기본 취지는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연명 치료 본인이 결정하는 게 최선

환자 본인은 직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해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보완적으로 환자 가족 2인이 동일하게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진술하거나,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가능하다.

연명의료 중단, 환자의 뜻 모르면 가족전원 동의해야

Q: 영양 공급도 중단하나?
A: 영양·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통증 완화 치료도 계속한다.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만 중단할 수 있다.

Q: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인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는 어떻게 다른가?
A: 사전의향서는 만 19세 이상인 사람이 평소 직접 작성해 두는 것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질병 상태와 치료법, 연명의료 시행법과 중단 결정, 호스피스 제도 등을 설명하고 의사가 작성한다. 실제로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때는 두 서류의 효력이 같다. 법에 따라 신설되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구'에서 이 서류들을 등록·보관하고, 임종이 닥치면 관리기구를 통해 실시간 조회할 수 있게 된다. ▶연명의료 시범사업 기관 현황

Q: 어떻게 작성하나?
A: 연명의료계획서는 통일된 서식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의사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환자가 동의하면 의사가 작성하게 된다. 사전의향서도 일정한 서식이 만들어지며, 의료기관이나 비영리법인(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상담받고 작성하면 된다.

Q: 등록 후 생각이 바뀌면?
A: 얼마든지 철회나 수정이 가능하다. ▶더보기

의료계는 이 법이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이상적(理想的) 법령'이라고 주장한다.  담당의사와 관련 분야 전문의 한 명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이 임박한 상태'라고 동의해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 중단 의사표시를 스스로 밝히는 게 원칙인데, 연명의료중단의향서를 미리 작성하지도 않고, 명확한 의사표시도 불가능한 경우엔 배우자·직계비속·직계존속 중 2명 이상의 일치한 의견을 받아야 한다.

의료계는 임종을 앞두고 직접 서명을 못 할 정도로 힘이 없는 환자를 상대로 참관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환자의 뜻을 녹음하도록 한 규정 등을 따를 자칫 비윤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임종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원하느냐"라고 묻고 녹취하도록 한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연명의료 중단 남용을 위한 장치 마련은 물론  '임종을 앞둔 환자'라고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의학적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법의 인식이 낮아 시행 초기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임종기' 환자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는 하는 문제도 있다. 웰다잉법에 따르면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등 2명이 판단하도록 규정했다. 의료계에선 사전적 의미대로 해당 전문 분야에서 3∼4년 레지던트 훈련을 마친 뒤 진료 과목별 자격시험을 통과한 의사만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게 하면 환자가 대형병원을 전전해야 하고 의료 전달체계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어길 경우 현장 의료진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많고, 세부 규정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는 "연명의료를 중단했다가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의사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지 않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늘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각 병원 중환자실이 마비될 수도 있다고 의료계는 주장했다. ▶곧 임종 환자에 "인공호흡기 원하세요?" 물어보라니

아름답게 맞이하는 죽음, 웰다잉(Well-Dying)을 위해 국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대의대에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병에 걸렸을 때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는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아는 환자들은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웰다잉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꼽았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제대로 정착돼 '웰다잉'을 실현하려면 한국인 특유의 '의료집착' 문화가 먼저 개선되어야 하고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전문학회는 주장한다.

또한 의사가 먼저 환자에게 병 상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후 사전에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환자가족 전원 동의로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환자가족이 맞는지와 환자가족 전원 동의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편이고, 의료현장에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갈등은 대부분 환자가족의 경제적인 부담에서 시작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연명의료법남용 방지책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선 말기암(癌)으로 판정받은 사람의 97%가 항암치료를 받고, 호스피스 치료보다 5배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도 병상에서 항암제 투여와 주삿바늘로 극심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를 고민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어떻게 사람다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진지하고 엄숙하게 요구된다. ▶'좋은 죽음'보다 '마지막까지 좋은 삶'

여전히 우리 정서로는 자신이 원하더라도, 사실상 죽음의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좀 더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인 생소한 중환자실이 아니라 내게 익숙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너희와 함께 한 세상이 참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며 떠날 수 있어야 한다. ▶人間다운 죽음을 맞는 첫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