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월드컵경기장 풋볼 팬타지움에서 여자축구 대표 에이스들의 이름이 씌어진 의자를 발견한 윤덕여 감독이 반색하며 포즈를 취했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윤덕여 감독(55)이 이끄는 여자축구대표팀(FIFA랭킹 15위)은 지난 20일 '세계 1위' 미국 원정 1차전에서 1대3으로 패했다. 2015년 캐나다 대회 등 월드컵 3회 우승, 올림픽 4회 우승에 빛나는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1996년생 공격수' 한채린(위덕대)이 대포알 슈팅을 꽂아넣는 등 당차게 맞섰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플레이는 인상적이었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팬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그래픽=문성원 기자 moon@sportschosun.com

23일 미국과의 원정 2차전에서는 '플레이메이커' 지소연과 전문 센터백, 골키퍼의 줄부상속에 0대6으로 완패했다. 최강 미국과의 2연전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했고, 해야할 일도 깨달았다.

윤덕여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수들과 팬들을 향해 손하트를 그려모이며 활짝 웃었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2014년 국제축구연맹(FIFA)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캐나다의 여자축구 등록선수 숫자는 225만5000명이다. 전세계 등록선수 480만 명의 절반에 달한다. 미국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여자축구 선수만 37만 명이다. 2017년, 대한민국 여자축구 등록선수는 1600여 명에 불과하다. 1600명 중 선발된 23명의 태극낭자들이 '최강' 미국 과 당당히 맞섰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5년째 이끌고 있는 '덕장' 윤덕여 감독을 미국 출국 전 서울월드컵경기장 풋볼팬타지움에서 만났다.

윤덕여호 3기, 2019년 프랑스월드컵을 향한 최고 랭킹, 최고의 대표팀을 꿈꾼다. 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덕장' 윤 감독의 3번째 임기

ⓒAFPBBNews = News1

윤 감독은 2013년 12월 여자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2015년 캐나다월드컵에서 지도력을 입증했다. 12년만의 월드컵 진출, 사상 첫 월드컵 16강 쾌거를 이끌었다. 2015년 7월, 2년 재계약을 맺었고 지난 4월 '평양대첩'에서 '최강' 북한을 누르고 조1위 요르단아시안컵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7월, 기술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대한축구협회와 2년 계약 연장에 합의, 3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바야흐로 윤덕여호 3기, 2019년 6월, 프랑스여자월드컵까지 총 6년6개월간 대표팀을 책임지게 됐다. 2000년대 이후 남녀축구를 통틀어 최장수 감독이다.

5년간 A매치 72경기(20일 미국전 포함)를 치른 윤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북한과의 준결승전, 캐나다여자월드컵 16강 스페인전, 지난 4월 평양에서 치른 북한전"을 꼽았다. "지금도 생생하다. 인천아시안게임 때는 연장승부를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골을 허용했다. 많이 아쉬웠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2015년 캐나다에선 12년만의 월드컵에서 사상 첫 16강을 해냈다. 올해는 평양 5만 관중 앞에서 프랑스월드컵 티켓이 걸린 아시안컵 본선행을 이루게 됐다"고 했다.

여자축구감독으로서 첫 A매치 100경기 가능성을 언급하자 윤 감독은 언제나처럼 선수들을 앞세웠다. "나보다 우리 선수들이 더 많이 센추리클럽에 가입했으면 좋겠다. 15세 때 태극마크를 단 (지)소연이도 아직 100경기가 안됐다.(96경기) 유영아는 83경기다. 지난 5년간 고비가 많았지만 우리선수들이 정말 잘해줬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모두 우리 선수들 덕분이다. 모두 선수들이 해준 것이다."

▶'세계 최강' 미국과의 평가전 의미

윤 감독은 지난 2014년 6월, 부임 6개월만에 '최강' 미국과 평가전을 치렀다. 1대4, 2대5로 대패했다. "세계 여자축구의 벽을 실감했다. 당시 '레전드' 애비 웜바크와 처음 맞붙은 우리 선수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경기력뿐 아니라 미국의 관중, 인프라를 보면서 많은 것은 느끼고 배웠다"고 떠올렸다. 2015년 캐나다월드컵 직전 평가전, 두번째 미국 원정에선 0대0으로 비겼다. "월드컵 직전에 '최강' 미국과 붙는 것에 대해 내부의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경기를 하면 우리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스리백 전술을 내세웠다. 미국과 비기면서 캐나다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상승 효과'가 있었다."

윤 감독은 도전과 실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번째 임기, 첫 A매치 상대도 '최강' 미국이었다. "프랑스월드컵으로 가는 길에서 답을 구하는 경기가 될 것이다. 답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패배를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자꾸 깨져봐야 한다. 아직 여자축구는 실력이나 인프라에서 세계 톱 레벨이 아니다. 전세계 강호들과 많이 부딪쳐보고 깨지고 아파봐야, 대처법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지는 것도 중요하다.물론 지려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지더라도 우리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전, 윤 감독은 과감한 세대교체와 실험을 단행했다. "여자축구도 월드컵 4년을 주기로 전술, 선수의 변화가 온다. 새 선수들의 경쟁력과 기존 선수들과의 조합을 살펴보려 한다"고 했다. 기대되는 선수를 묻는 질문에 윤 감독은 지체없이 '왼발 에이스' 한채린을 지목했다. "20세 이하 대표팀부터 지켜봤다. 여자축구선수권에서 유심히 봤다. 기존 선수들 못지않은 능력을 갖고 있다. 빠르고 왼발이 좋다"고 했다.

윤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한채린은 지난 20일 미국과의 1차전 전반 종료 직전 벼락같은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최강 미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데뷔전 데뷔골을 터뜨리며,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FIFA 랭킹, 임기내 한자릿수로!

윤덕여호는 올해 역대 최고 랭킹을 찍었다. 2010년 이후 10위권으로 뛰어오른 한국 여자축구는 10월 기준, FIFA랭킹 15위다. 윤 감독은 만족하지 않았다. "욕심이 있다. 내 임기내에 한자릿수 랭킹을 반드시 만들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2019년 프랑스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또렷한 계획도 수립했다. "여자축구 최근 트렌드는 전술, 기술, 플레이스타일 모두 남자축구 못지 않다. 미국 축구를 보면 알겠지만, 공수 전환 템포가 엄청 빨라졌다. 체력이 담보돼야 한다. 볼을 뺏을 때나 뺏겼을 때 반응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빨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미국의 강력한 파워축구에 대항해 아시아 축구의 생존법을 스피드와 체력에서 찾았다. "캐나다월드컵 때 프랑스과의 16강전에서 우리선수들은 세계 축구의 현실을 느꼈다. 이 아쉬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스피드와 조직력, 체력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의 기술'에 '북한의 체력'을 갖출 수 있다면 세계 무대에서 해볼 만하다."

현역 시절 악바리 근성과 끈끈한 수비로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 나섰던 '국가대표 센터백' 출신 윤 감독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 역시 단단한 '수비라인'이다. "공격이 좋은 팀은 승리하지만 수비가 좋은 팀은 우승한다. 12월 일본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수비 안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서연, 임선주 등 베테랑 수비수들의 부상은 뼈아프다. "수비 조직력은 절대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이 부족할 때는 전술 이해도는 물론 서로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윙백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미국축구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윙백이다. 오하라 등 윙백들의 공격 성향이 다니 알베스, 카일 워커 못지 않다. 장슬기, 박초롱도 윙백으로서 기술적 능력을 가졌다. 빌드업 능력, 공격을 주도하는 윙백의 역할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FIFA랭킹 한자릿수를 위해 전술 외에 여자축구 A매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 감독이 부임 후 치른 A매치 72경기 가운데 아시안게임, 동아시안컵, 키프러스컵 등을 제외한 평가전은 지난 5년간 8경기에 불과하다. 이웃 일본은 올해 코스타리카,네덜란드, 벨기에와 잇달아 A매치를 가졌다. 미국, 브라질, 호주와 4개국 대회도 했다. 이번 A매치 기간엔 스위스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중국은 2015년 프랑스여자대표팀 사령탑 출신 브루노 비니 감독이 부임한 후 더욱 적극적이다. 올해 초 크로아티아, 북한, 핀란드와 A매치를 치렀다. 10월엔 영천 4개국 대회에서 북한, 멕시코,브라질과 경기한다. 11월엔 호주와 2연전을 한다.

미국전을 앞두고 지난 4월 평양 이후 무려 6개월만에 소집된 한국 여자대표팀에게 A매치는 간절한 꿈이다. 유럽, 미국 등 강호들과 맞붙어 싸워야 큰무대에서 경기력도, 조직력도, 자신감도 올라간다. 윤 감독은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선수들에게 A매치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 강한 팀과 맞붙어 승리하면 랭킹도 올라간다. 자신감도 올라간다. 안방 A매치를 통해 팬들의 관심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도 자주 생겼으면 한다"고 바랐다.

1600명 등록선수,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기적같은 투혼은 간절함에서 나온다. 발 맞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핑계대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최강' 미국과의 맞대결, 체력과 체격, 기술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선수들은 한발 더 뛰어야 했고, 몸을 날려야 했다. 센터백 신담영은 목뼈에 멍이들었고, 쇄도하던 상대 공격수를 온몸으로 막아낸 골키퍼 강가애는 얼굴을 다쳤다. 최전방부터 수비라인을 오르내리며 빌드업, 연결, 마무리 슈팅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지소연은 무릎 부상으로 2차전에 나서지 못했다. 윤덕여호에게 A매치는 소중하다. 매순간이 절실하다. 더 높은 곳, 더 밝은 미래를 꿈꾼다. 감독도, 선수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달리고 또 달리는 이유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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