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오줌은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입니다. 한 방울이라도 통 속에."
1970년대 각급학교나 버스터미널 공중화장실 소변기에 붙어있던 문구이다. 가발, 이쑤시개 등 수출 품목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 녹십자는 오줌을 이용해 국내 최초로 혈전용해제인 '유로키나제'를 만들어 수출했다. 처음에는 이색 사업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녹십자는 반세기 동안 의약품 국산화와 외화 획득에 공헌해왔다.
녹십자는 올해 창립 50년을 맞았다. 1968년 신갈공장을 착공하면서 용인에 터를 잡았고 1999년에는 본사도 이전했다. 특히 고집스런 도전으로 차곡차곡 역사를 만들어냈다. 혈액제제와 백신 분야에 뛰어든 1960년대 당시로서는 무모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혈액제제는 의료계에서조차 개념이 생소했고, 백신은 수익성이 떨어져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이미 자급자족하고 있는 필수 의약품을 우리 손으로 생산하겠다는 고집으로 국산화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녹십자는 황무지였던 대지에 당시 제약회사 형편으로는 엄청난 규모이자 영업이익의 두 배가 넘는 약 2600만원을 투자해 신갈공장을 지었다. 또 일본뇌염 백신과 DPT(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백신을 개발해냈다. 1971년에는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에서 6번째로 혈액제제 공장을 완공했고, 수입에 의존하던 필수 의약품의 국산화 역사를 줄줄이 써나갔다.
특히 순수 우리 기술로 생산한 유로키나제는 핵심 수출 품목 중 하나였다. 이런 수출 호조에 힘입어 1979년 제약사 최초로 수출 1000만 달러를 돌파하며 1982년까지 의약품 수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83년에는 세계 3번째로 B형 간염 백신 '헤파박스-B' 개발에 성공, 우리나라의 B형 간염 보균율을 13%에서 2~3%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에도 백신을 개발해 조기 진정을 이끌었다.
녹십자의 사회적 기여는 경영 성공으로도 이어졌다. 작년 매출은 1조1979억원을 달성했고, 1972년부터 45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녹십자 혈액제제 기술의 결정체인 면역결핍치료제 '아이비글로불린-SN'은 국내외 연매출 700억원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70%에 달할 정도로 높다. 수두 백신도 작년에 약 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독감 백신은 2009년 출시 이후 굴지의 다국적제약사들을 제치고 줄곧 국내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독감 시기가 정반대인 남반구 지역까지 공략하며 해외 누적 매출은 2억 달러를 넘어섰다. 여기에 지난 2015년 기준으로 유엔 입찰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수주 실적 중 42%가 녹십자 제품일 정도로 'Made By 녹십자'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녹십자는 매년 매출의 10% 이상의 금액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이익 감소가 불가피하더라도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최근 5년새 연구개발 비용을 약 2배 가량 늘려왔다. 주력하고 있는 세포치료제는 가족사인 녹십자셀과 녹십자랩셀이 주도해 개발에 나서고 있다. 녹십자셀은 2007년 간암 치료 면역항암제인 '이뮨셀-LC'의 국내 허가를 받아 세포치료제 중 최초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녹십자랩셀은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면역세포인 자연살해(NK)세포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간암에 대한 임상시험 2상에 돌입하는 등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녹십자는 세포치료제 사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연면적 2만800㎡로 아시아 최대 연구시설을 갖춘 셀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또 북미 혈액제제 사업에도 주력해 캐나다에 100만L 규모의 혈액제제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