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은 없다’ 촬영 도중 발생한 ‘여배우 성추행 사건’을 놓고,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2015년 여배우 A(37)씨는 영화 속 강간 장면을 찍다가 단역 남자 배우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며 고소장을 냈다. “단역 상대 배우가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성기를 만졌다”는 내용이었다.
문제의 남자 배우는 경력 20년 연극 배우 출신인 조덕제(49)씨. 그는 최근 2심 법원이 1심 무죄 판결을 뒤엎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 40시간을 선고하자, 언론에 “내가 바로 그 성추행 배우”라며 공개적으로 결백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감독이 나섰다. 장훈(51·‘택시운전사’ 장훈 감독과 동명이인) 감독은 조씨 주장을 반박하는 인터뷰를 갖고 “감독이 지시한대로 촬영에 임했다는 조씨 주장은 다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씨는 조씨가 계속 감독을 물고 늘어질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작 네티즌들은 피해자인 A씨에게 주목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A씨의 과거 사건을 끄집어내면서 ‘여배우가 조씨를 무고한 것’이라는 추측을 마구 쏟아내는 중이다. 2014년 12월 A씨는 외식업체의 대표선수, 백종원씨의 프랜차이즈 업체 중 한 곳인 국수 식당 가맹점에서 국수(4500원)와 주먹밥(2000원대)을 먹고 배탈이 나 3개월 간 치료를 받았고,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지급받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억측이 쏟아지자, 결국 A씨 대리인도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유죄 판결 내용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다.
남자 배우·여자 배우·영화 감독 모두 사건 발생 당시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양은경 조선일보 법조전문기자에게 이들 입장이 왜 엇갈리는지 물어봤다.
-1심에서 무죄였던 조덕제씨의 성추행 혐의가 2심에서 유죄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요. "피해자 A씨는 조씨가 촬영 중 신체 부위를 만졌다고 주장하고, 조씨는 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조씨가 연기 상황에 몰입해 다소 거칠게 행동했을 뿐, 추행의 고의는 없었다고 봤습니다. 촬영 내용 자체가 '술에 취해 새벽에 들어온 남편(조덕제)이 곱게 차리고 등산을 가려던 아내(A씨)를 막아서며 거칠게 몰아붙이고, 강간하다시피 성관계를 갖는다'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체 접촉이 있었더라도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며, 추행하려던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본 거죠. 하지만 2심은 조씨 행동이 영화 설정을 넘어 추행에 이르렀다고 봤습니다.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사건 직후 피해자가 감독에게 항의하며 조씨 하차를 요구했으며, 조씨도 무릎꿇고 사과한 점 등이 근거가 됐습니다."
-조씨는 '감독의 디렉팅'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법원은 감독의 지시를 어디까지 인정했나요. "원래 시나리오는 '바지를 찢어 내리면서 강제로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이었는데 현장에서 상의를 찢는 것으로 변경됐습니다. 이는 피해자도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 당일 감독은 조씨를 따로 불러 '아무 대사나 나오는대로..옷을 확 찢어버려라' '사육하는 느낌이 들도록 거칠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심은 조씨 행동이 이러한 디렉팅의 범위 내에 있었다고 봤지만, 2심은 이를 넘어섰다고 판단했습니다. 옷 속에 손을 넣어 피해자의 신체 부위를 만지라는 구체적 지시는 없었다는 겁니다."
-조씨의 디렉팅 주장이 사실이라면, 성추행의 법적 책임은 감독과 배우 둘 중 누구에게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디렉팅이 있었다고 해도 성추행으로 기소된 것은 조씨이기 때문에, 당장 감독에게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렵습니다. 1심은 감독이 조씨를 따로 불러 '거친 행동'을 지시하는 바람에, 여배우로서는 성추행으로 오해할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배우가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는 거죠. 반면 2심은 디렉팅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조씨의 행동은 그 범위를 넘어섰으므로 조씨가 추행에 대한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화 '뫼비우스' 주연을 맡았던 여배우가 감정 이입을 이유로 감독에게 뺨을 맞고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자 출연을 포기한 뒤, 김기덕 감독을 고소한 사건이 최근 있었죠. "'영화계 갑질 논란' 맥락에서는 이 사건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여배우 뺨을 때리고,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면 폭행이나 강요죄가 성립될 수도 있겠죠. '사랑은 없다' 케이스 역시 조덕제씨의 유·무죄를 떠나, 여배우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게 느낄 수도 있어요. 자신은 배제된 채, 감독이 남자 배우에게 별도로 거친 내용의 연기지시를 했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할 틈이 없었던 것이니까요."
-일부 네티즌은 조씨가 억울하다면 여배우를 무고죄로 맞고소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조씨가 무죄라면 여배우에게 무고죄가 성립할 수 있나요. "조씨는 2심 판결이 '억울하다'며 바로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니 더 충격이 크겠지요. '영화 촬영 설정 자체가 '부부 강간'이었다' '스태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대 배우를 추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씨는 A씨를 명예훼손 및 무고로 고소한 상태입니다. 추행한 사실이 없는데, 자신을 처벌 받게 하려는 목적에서 허위 고소를 했고, 언론 인터뷰로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내용입니다. 2심 재판부는 오히려 조씨에게 무고죄를 인정했습니다. 조씨가 추행을 한 게 맞기 때문에 조씨의 맞고소가 허위 고소라고 본 것이죠. 조씨는 대법원에서 이 부분도 강력하게 다툴 것으로 보입니다."
-조씨는 또 "감독이 조씨를 위해 법원에 사실확인서와 진정서를 제출한 이들에게 '뒤엎어라'라고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감독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나요. "이 부분은 조씨와 감독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사실조사가 필요합니다. 만일 감독이 증인들에게 '법정에서 말을 바꾸라'고 했다면 위증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판결문 상으로는 조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이 2심에서 말을 뒤집은 정황은 드러나 있지 않아요. 1·2심 판단의 차이는 증인의 증언 내용보다는 당시 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나왔습니다."
-2015년 4월 영화 촬영 직후, 조씨가 여배우에게 사과한 녹취 파일과 문자 메시지가 있다고 합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이런 ‘사과’는 유죄 입증의 증거로 쓰이나요. “해당 녹음 파일과 문자메시지는 2심이 조씨의 유죄를 인정한 근거 중에 하나입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사과’는 유죄 인정의 핵심 증거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일단 피해자를 진정시키려는 생각에서 사과부터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과를 했다고 모두 유죄 판결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정정보도문]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8년 6월 3일 <반격 나선 김기덕, 성폭력 의혹 제기 여배우·PD수첩 고소>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20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고 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 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고,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으며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