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1동 주민센터 인근 공사장. 재활용품 판매 기업 '나누기와 보태기'가 영업하던 자리다. 현재 회사가 있던 자리에는 임대주택이 올라가고 있었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설립 6년 만에 휴업했다.
'나누기와 보태기'는 2011년 마을기업으로 선정돼 출범했다. 사업 초기 주민들에게 재활용품을 기부받아 고친 후 되팔았다. 직원 20명에 매출은 연간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적자를 보지 않았다. 2012년까지 정부 지원금 8000만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자립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이 회사 김모(68) 대표는 노인 택배 사업에 손댔다. 하지만 자전거 등 운반 수단 마련은 생각보다 큰돈이 들었다. 노인 택배원은 집 주소를 잘 찾지 못해 택배 사고도 잦았다. 김 대표는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회사 있던 자리가 임대주택 부지로 지정되면서 휴업을 했다"며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8일 협동조합과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 기업을 통해 민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이라고 했다. 지난 7년간 추진된 마을기업 사업 결과는 기대와 다르다. 지금까지 설립된 전국 마을기업 1446곳 가운데 절반 이상이 폐·휴업하거나 적자에 시달리는 등 부실 경영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19일 전국 시도별 지자체로부터 전국 마을기업 1446곳의 2016년 회계감사 경영 상태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폐업한 곳이 222곳(15.4%), 매출액 대비 순이익 비율(ROS)이 10% 이하인 부실기업이 303곳(20.9%)이었다. 적자를 기록한 곳이 64곳(전체의 4.4%), 폐업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행정안전부 회계감사에 응하지 않거나 순이익과 매출액이 없어 사실상 간판만 달린 폐업 의심 기업도 42곳(2.9%)이었다. 절반이 넘는(56.4%) 마을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은 후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불투명한 경영을 한 것이다.
대다수 마을기업은 "2차 지원이 끝난 후 자생 단계가 고비"라고 호소한다. 2013년부터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서울 양천구 '양천행복가게'가 대표적 예다. 양천구 목2동 자치센터 주민자치위원회 23인이 모여 재활용품을 기증받아 판매했고 초기 수익금이 높았다. 불우 이웃 성금 모금에도 적극 참여해 '착한 기업'으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2014년 2차 지원이 끝난 후 급격한 경영난을 맞아 지난해 5월 문을 닫았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마을기업 중 초기에는 좋은 수익을 보이다가도 자립 단계에서 급격히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민봉 의원은 "지원 후 한 번도 시찰이 없다가 회계 결산 때 돼서야 '한 달 만에 지원금을 다 쓰라'고 통보받은 곳도 있다"면서 "광역 지자체가 스스로 전담권을 가져갔지만 제대로 관리를 못 해 폐업 기업 대다수는 지원금 반환도 안 돼 국민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1·2차 지원 단계에서부터 시·군·구 차원의 개입이 형식적인 데 그치다 보니 홀로서기 단계 역시 방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16년 서울시 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된 광진구 교육·식품 제조 업체 '광진아이누리애 사회적협동조합' 대표(38)는 "2013년 1차 지원 때부터 사실상 경영 컨설턴트나 홍보 지원을 받아본 경우가 손에 꼽는다"면서 "방치되다시피 하다 지난해 우수 기업이 되고 나서야 관련 지원 물꼬가 트이더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 지원 없이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사실상 '기업'이라 부를 수 없다"면서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일자리 창출 기반으로 삼고 싶다면 사업 지속성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기업
지역 관광, 농촌 체험, 전통 공예, 마을 내 폐기물 재활용 등 지역 내 사업을 활용해 세운 기업이다. 2010년 시작한 사업으로 지역 주민 5인 이상이 출자하면 세울 수 있다. 정부가 선정 첫해에 5000만원, 그다음 해에 3000만원을 지원하고, 5년 내 상환 조건으로 1억원가량의 공간 임차 보증금을 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