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 영화평론가

유난히 조용했던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신성일의 출현은 단연 화제였다. 은발의 그가 레드카펫에 오르자 젊은 스타 못지않게 환호가 쏟아졌다.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 신성일'이라는 주제로 한국 영화 특별 회고전이 열리는 행사장에서 신성일은 좌중을 압도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지난 6월 폐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노(老)배우의 멋진 모습과 자신감은 병마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80세 노장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여전했다. 신성일은 1960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520편이 넘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열어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의자가 비치되었지만 한 시간 내내 앉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노익장을 과시했고 무대를 걸어 다니며 적극적인 태도로 관객을 맞았다.

최근 한국 영화가 사회고발 장르에만 집중돼 재미와 오락을 추구하는 영화의 본질을 벗어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2019년까지 영화 출연 계획과 내년에는 김홍신의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영화로 제작해 힘들고 지친 우리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의 열정을 보면서 순간 할리우드의 노장 배우들이 생각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와 같이 젊은 시절 인기를 누리던 할리우드 배우들은 8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우리에게 원숙한 연기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영화계에서는 이런 노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힘들다. 인기를 누렸던 배우들도 나이가 들면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다양한 소재의 영화가 없는 것은 물론 배우의 수명도 유난히 짧기 때문이다.

배우 신성일을 보면서 그와 같은 영화계 선배 배우들의 열정이 우리 영화를 지탱해온 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우리 영화에서도 신성일과 같은 노배우들의 활약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외쳐본다. "신성일 파이팅!"

배우 신성일이 13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두레라움홀 광장에서 열린 신성일 야외사진전 개막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신성일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주인공으로 이번 신성일 회고전에서는 '맨발의 청춘'과 '장군의 수염' 등 주요 작품 8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신성일 “새 작품 기획 중…따뜻한 영화 만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