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주필

[쑥대밭 된 KAI… 17조 수출 미국 훈련기도 흔들]

18일 아침 신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방위산업 전시장에서 한국항공우주(KAI)가 만든 비행기와 헬기에 타고 웃는 사진이 실렸다. 정권 교체 후 불과 얼마 전까지 비 새는 불량 헬기를 만든 ‘방산비리 적폐’로 손가락질받던 게 이 기업이다. 그런데 전 정권 임명 사장을 구속하고 현 정권 선거캠프 인사가 새 사장으로 부임하자 이 기업은 갑자기 우리나라 항공산업을 짊어지고 나갈 유망 기업으로, 불량 헬기는 명품 헬기로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물정 모르고 사장을 더 하겠다고 사표 내지 않고 버틴 사람도 참 딱하다. 그 한 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초를 겪고 멀쩡한 기업이 냄새나는 ‘폐기물’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한 사람을 몰아내기 위해 앞뒤 살피지 않고 기업 자체를 난도질한 것은 도를 넘었다. 이 세상의 모든 기계는 개발 과정과 양산 이후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세계 최고 자동차회사들의 차량도 리콜이 있다. 그 문제를 고쳐나가면서 신뢰도 높은 장비로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귀중한 ‘기술’이 이 과정에서 축적된다. 이 당연한 과정이 한국에선 용납되지 않는다. 특히 관련 기업이 정치 표적으로 찍히면 보완해야 할 문제가 ‘비리’로 둔갑한다. 감사원이 ‘적발’한 KAI의 수리온 헬기 문제는 세계의 다른 헬기들도 겪은 문제들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사실을 균형 있게 알 수 있도록 감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하지만 ‘비 새는 헬기’ ‘유리창 깨지는 헬기’ ‘날개가 동체를 때리는 헬기’ ‘금 간 헬기’ ‘얼음 어는 헬기’라는 식으로 문제만을 지적한다.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언론은 ‘명품 헬기라더니…’라고 보도한다. 헬기 동체에 금이 가고 비가 새는 것은 개발 초기 헬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헬기도 마찬가지다. 수리온은 이미 고쳤다. 돌이 날리는 헬기 주변 상황상 앞 유리창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미군은 여분 유리창을 준비해서 다닌다. 수리온은 유리창 소재를 바꾸고 보호 필름을 붙였다. 날개가 동체 일부를 친 것은 조종사가 너무 과도하게 조종간을 조작한 때문이었다. 경고장치를 단 이후엔 한 건도 사고가 없었다. 지금 국군이 운용하는 여러 다른 헬기가 수리온과 같은 수준의 얼음 결빙 방지 기능을 갖고 있는데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수리온만 문제 삼는다. 최고 수준 결빙 방지 시험도 곧 미국서 한다고 한다. 미국이 자랑하는 F-35 스텔스 전투기는 문제가 발생해 고친 건수가 1500여 건에 달한다. 지난 7월 취역한 미 차세대 항공모함 포드호는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가 발생해 돈도 엄청 더 들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비난 폭격에 침몰했을 것이다. 수리온은 세계 최고 헬기는 아니다. 그러나 결코 불량 헬기는 아니다. 지금 생산되는 헬기 중 최소 중간은 되며 비록 많은 기술을 해외 도입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런 헬기를 만들게 됐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새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감사원이 상당 부분 보도되거나 알려진 수리온 헬기 문제를 모아 발표했다. ‘적폐 청산’ 신호탄이었다. 감사원이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나서는 예정된 수순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쏟아져 나올 줄 알았던 ‘비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분식회계’다. 검찰은 애초 목표로 한 수사가 성과가 없으면 수사를 그만두지 않고 ‘분식회계’로 방향을 돌린다. 기업 회계는 문제 삼으려면 삼을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완종씨가 그렇게 분식회계 수사를 당하다 자살했다. KAI 회계법인은 수년간 ‘적정’ 의견을 내왔고 검찰 수사 이후에도 이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업계에선 검찰 지적 사항이 실제 분식 회계가 벌어진 대우조선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검찰은 KAI가 T-50 국내 납품가를 뻥튀기했다고 했다. 수출용과 우리 군용은 사양이 다르다. 수출 판로를 위한 마케팅도 있다. 설사 값을 더 받았다 해도 사실상 공기업인 KAI의 수익이 어디로 가겠나.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미국 공군은 차기 고등훈련기 기종을 결정한다. 총 1000대로 50조원 규모 시장이다. 1차분만 17조원이다. KAI의 T-50이 선정되면 일자리 17만개가 생긴다. KAI 미국 파트너인 록히드마틴은 전통적으로 현 공화당 정권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국은 비리 기업은 입찰 자격을 제한한다. 보잉 등 경쟁사들은 KAI가 ‘얼마나 형편없고 믿을 수 없는 회사’인지 한국 감사원, 검찰 발표를 인용해 홍보전을 펼 것이다. 정치에 정신 팔려 제 발등을 찍어도 제대로 찍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록히드마틴은 최근 KAI에 투명성 관련 질의서를 보내왔다. 정부 내에 ‘이러다 T-50이 탈락하면 누가 책임지나’라는 위기감이 돌았을 것이다. 그 직후 열린 방위산업전시회에 문 대통령이 참석했다. 총리가 가던 자리다. 대통령은 “T-50은 23억달러 이상 해외 판매됐고, 성능과 가격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꼭 미국 수출을 이뤄달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T-50 판촉이 반갑지만 왠지 앞뒤 안 맞는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