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과 향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미국 네바다주)에는 작년까지 프로 스포츠팀이 하나도 없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유동 인구는 많지만 뜨내기 여행객이 대부분이라 지역 팬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한 프로 스포츠팀이 정착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려 속에서 '베이거스 골든나이츠(Vegas Golden Knights)'가 올 시즌부터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에 합류했다. 골든나이츠는 라스베이거스를 연고로 한 첫 메이저 프로팀이다. 사막에 세워진 휘황찬란한 도시에 겨울 스포츠의 꽃 아이스하키라니. 더구나 아이스하키는 풋볼(미식축구)·야구·농구와 함께 미국 '4대 메이저 스포츠'로 꼽히긴 하지만 날씨가 더운 서부와 남부에선 인기가 별로라 '3.5대 메이저'란 말을 듣기도 한다.

올해 NHL에 합류한 아이스하키 팀 베이거스 골든나이츠는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총기 참사로 슬픔에 잠긴 시민들에게 위안을 준다. 지난 11일 NHL 홈 개막전에서 골든나이츠의 데릭 잉글랜드(왼쪽)가 득점한 뒤 동료들과 기뻐하는 모습.
‘베이거스 스트롱’이라고 쓴 피켓을 든 팬의 모습.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평가했지만, 사막 도시는 지금 아이스하키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골든나이츠는 16일(한국 시각) NHL 정규 리그 홈 경기에서 보스턴 브루인스를 3대1로 제압했다. NHL 신생팀 역대 최초로 개막 후 3연승을 달렸던 골든나이츠는 전통의 강호 브루인스를 상대로도 철벽 수비를 선보이며 짜릿하게 승리했다. 현재 4승1패(승점 8)로 서부 콘퍼런스 퍼시픽지구에서 당당히 2위를 달린다.

미국 스포츠계는 이 팀을 "외인 구단이 일궈낸 놀라운 결과"라며 주목하고 있다. 골든나이츠는 지난 6월 기존 30팀이 '보호 선수'에서 제외한 선수 중 1명씩을 데려와 팀을 꾸렸다.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자기 팀에서 쫓겨났다는 선수들의 절박함이 끈끈한 조직력을 만들어냈다. 베테랑 공격수 제임스 닐(30)이 6골(리그 득점 2위)로 공격 선봉에 섰고, 지난 시즌 챔피언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벤치 신세가 된 왕년의 스타 수문장 마크 안드레 플러리(33)가 정신적 지주로 팀을 이끈다.

지역 팬들도 신이 났다. 매 경기 1만7000명이 넘는 팬이 꽉 들어차는 홈구장 T-모바일 아레나는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팬 중에는 'Vegas Strong(라스베이거스는 강하다)'이란 문구를 쓴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1일 벌어진 '라스베이거스 기관총 학살극' 이후 시민들이 이 팀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는 해석이다. 당시 공연장을 향한 무차별 총격으로 58명이 숨지는 최악 참사가 벌어졌다. 골든나이츠는 사건 9일 뒤 홈 개막전을 열었고, 선수들은 헬멧에 '베이거스 스트롱'이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나왔다. 창단팀의 첫 선수 소개 시간엔 선수보다 먼저 참사 당시 구조에 나섰던 소방관과 경찰, 응급 처치에 매달린 의사와 간호사 등 숨은 영웅들 이름을 불렀다. 홈 팬들은 기립 박수로 시민 영웅들을 맞았다.

야구의 시구에 해당하는 '퍽 드롭(Puck Drop)' 행사에선 참사에서 살아남은 어린이가 나와 퍽을 얼음판에 놓으며 경기 시작을 알렸다. 선수들은 스틱으로 일제히 얼음판을 두드리며 행사에 참석한 생존자들을 격려했다.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소방관 롭 마퀴스씨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비극을 겪은 우리를 위해 뛰는 스포츠 팀이 있어 매우 다행스럽다"며 "골든나이츠의 존재는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