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기 추리소설 쓰는 변호사

20년 법관 생활을 끝내고 올해 변호사가 되었다. 판사에 비할 때 변호사의 장점 중 하나는 주위에서 인기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판사 시절, 친구가 소주를 마시면서 누군가를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상대방도 이러저러하니 그러요러할 수도 있었겠지." 친구가 소주잔을 탕 놓고 말했다. "너는 꼭 그렇게 재판하듯이 말해야겠냐?" 친구는 다시는 그 사람 험담을 내 앞에서 하지 않았다. 난 후회했다. 술자리는 심판정이 아니다. 편 좀 들어준다고 무슨 허물이 있단 말인가.

판사 생활을 오래한 사람은 '중립 집착'이라는 물이 든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원고의 소장을 읽어보면 피고는 천하의 악당인데, 피고의 답변서를 받아보면 원고야말로 사악하다. 다시 원고의 준비 서면을 보면 피고는 거짓말 황제다. 이런 식이니, 한쪽 말만 듣고 판단을 내리는 일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그런데 나를 만나 호소하려는 그 '한쪽'은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이런 때에 법정에서나 읊던 중립을 내세우면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변호사는 그런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철저히 의뢰인 편을 들어도 무방하다. 아니 그래야 하는 직업이다. 의미가 많이 다르지만, 단테는 "지옥의 가장 밑바닥은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돼 있다"고 했다. 나는 절박한데, 저 사람은 중립의 월계관을 쓰고 고고하게 앉아 있으니 얼마나 미울 것인가. 그런 미움을 받을 가능성이 한결 줄어든 지금은 그래서 마음이 홀가분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