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전문 인력 해외 유출, 관련 인프라 위축 등으로 유사시 우리가 핵 개발을 결심하더라도 여기에 걸리는 시간이 지금보다 2배 이상 길어질 것이란 분석이 1일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2년 안에 독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국가군(群)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탈원전을 하면 이 기간이 4~5년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핵기술을 꾸준히 축적해온 일본은 최근 3개월이면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내부 분석이 나오는 반면, 우리는 스스로 핵무장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날 "탈원전 때는 4000여 명의 핵 관련 연구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등 핵 관련 국내 인프라 전반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핵무기가 필요한 상황이 되더라도 농축·재처리 등 하드웨어를 자체 확보하고 핵실험을 하기까지는 5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최소 4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원전 기술과 핵무기는 '핵분열'을 이용한다는 기본 원리가 똑같기 때문에 그동안 국제사회는 상업용 원전에서 세계 선두권인 한국의 '핵 잠재력'을 높게 평가해왔지만 탈원전으로 갈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핵무기를 만들지 않더라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직전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유지하는 것이 대북 핵 억제에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핵 잠재력이 곧 핵 억지력"이라며 "탈원전 정책은 핵 잠재력을 없애는 것으로 전략적으로 하책(下策)"이라고 말했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한국은 지금도 일본에 비해 독자 핵무장으로 가기 위한 기술적 준비가 뒤처져 있다"며 "탈핵 정책은 이 차이를 더 벌려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원전은 전시 등 유사시 자체 에너지 공급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에너지 안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됐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천연가스 비중을 확대할 경우 천연가스 수출국과 그 수송로를 지배하는 국가의 정치적 압력에 그대로 노출될 우려가 크다"며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국제 분쟁으로 천연가스 해상 수송로가 봉쇄될 경우 원전이 우리 경제 최후의 버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