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닭장 한번 크다야!"

"저게 뭔 닭장이냐? 내가 보기엔 꿩 사육장이구먼."

전남 완도의 열일곱 살 고등학생 최경주는 어느 날 언덕 위에 새로 생긴 그물 천막 안에 있었다. 입학 첫날 운동부에 선발돼 바로 그 '꿩 사육장'에 들어간 것이다.

"아따, 이것이 바로 골프공이여. 이렇게 채를 들었다가 탁 놓음서 공을 치면 돼야."

선생님의 시범을 따라 골프채를 잡은 최경주는 그물 너머 공동묘지까지 공을 날려버렸다. 30년 전 그렇게 골프와 처음 만난 최경주(47)는 이제 미 PGA 8승의 전설이 됐다. 골프채를 살 돈조차 없었던 그가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에 진출하기까지 고비마다 도움의 손길이 많았고, 그 고마움을 되갚고자 '최경주재단'을 설립한 지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오는 10월 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골프대회 개최를 준비 중인 최경주 이사장을 지난 18일 만났다.

오는 10월 26~29일 경남 김해시 소재 정산CC에서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대회를 열 예정인 최경주 선수. 그는 “올해 대회도 ‘골프를 통한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했다.

◇지난해 어려움 겪다 극적으로 현대해상 만나 경기 치러

―10월 26~29일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을 개최하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들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가.

“미국에는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등 프로 골퍼들이 주최하는 골프대회가 많았다. 아시아에는 이 같은 대회가 하나도 없었다. PGA 진출 초반에 ‘나도 10년 후엔 내 이름으로 한국에서 대회를 열겠다’고 마음먹었고, 2011년에 첫 대회를 개최했다. 미국은 후원 기업이 타이거우즈재단에 직접 기부를 하면 법인세 면세 등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한국은 다르더라. 국내 기업 기부는 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를 통하지 않으면 잘 안 되고, 세제 혜택도 차이가 나더라. 어려움을 겪는 사연이 조선일보에 보도됐고, 그걸 알게 된 현대해상(정몽윤 회장)이 후원을 결정해줬다. 총상금 7억5000만원 대회로 치르게 돼 너무 감사하다. 골프 꿈나무들과 침체기에 빠진 남자 골프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

―일반 대회와 ‘인비테이셔널’ 대회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일반 대회의 시드권자(선수)는 참가비를 내는데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은 100% 지원한다. 선수들을 위한 숙박비 일부와 식비, 참가 기념품 등도 지원해 선수를 감동시킨다. 수익금은 재단을 통해 골프 꿈나무 사업에 쓴다. 잭니클라우스대회에 가보면 출전 선수들이 대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게 드러난다. 선수로서 자부심을 느끼도록 배려하는 대회 분위기도 특징이다. 자연스레 후배들도 마음에 끌려 기부에 동참하더라.”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은 2011년에는 휴대폰 없는 무소음 대회, 2012년에는 담배 연기 없는 대회, 2013년에는 생큐·배려·존중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치러졌다. 지난해에는 갤러리들이 2만원 입장 금액을 지불하는 대신 자율적으로 기부하도록 했다. 대회가 끝난 후 지난해 우승자 주흥철 선수는 심장병 어린이를 위해 2000만원을 기부했고, 공동 2위를 기록한 김시우 선수도 기부에 동참했다.

최경주 이사장은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건 ‘항상 감사하라’는 한마디”라고 했다.

◇“꿈나무와 장학생 키우는 일 가장 큰 보람”

―자선에 뜻을 지닌 스포츠 스타 중에서도 기부만 하는 이들과 단체를 설립하는 이들로 나뉜다. 2008년 최경주재단을 직접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해마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를 통해서 기부를 해오고 있었다. 2007년 타이거 우즈와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상당히 많은 상금을 받게 됐다. 그들이 자신의 명성에 맞게 재단을 설립해 활동하는 걸 보면서 많은 공감을 했다. 일반 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골프를 매개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최경주재단을 설립했다. 골프선수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을 체계적으로 하고 싶었다.”

―현역 PGA투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재단 사업을 챙기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골프 국가대표가 많이 배출됐다. 그중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염은호가 있다. 최연소로 유러피안 투어에서 뛰면서 3주 연속 우승한 김민규, 현재 한국 주니어무대에서 기량을 발휘하는 골프꿈나무도 많다. SKT 후원금으로 대학등록금을 지원받는 장학생 중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한 친구도 있고, 그중 한 학생은 재단에 인턴으로 입사하기도 했다. 우리 재단 꿈나무들의 특징은 다들 밝고 환하다는 것이다. 든든하고 보람된다.”

―골프 꿈나무들과의 동계훈련에는 반드시 시간을 비운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나.

“동계훈련 3주는 아이들과 똑같은 곳에서 자고 밥 먹고 씻는다. VIP들이 오면 아이들과 함께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자연스레 정서적인 교류도 하고, 후원자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운다. 내가 강조하는 건 하나다. ‘항상 감사하라’는 말이다. 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하면 기회가 생긴다. 옛날 나의 고등학교 시절 어른들이 공짜로 필드에 데려가거나 필요한 용품 있으면 사라고 용돈을 주기도 한 것처럼.”

2016년 치러진 대회에서 후배선수들과 나란히 포즈를 취한 ‘탱크’ 최경주 선수. 왼쪽부터 김대현, 최경주, 김시우, 이동환 선수.

◇실내 돔 연습장 ‘드림네스트’ 꿈꿔

―미국에서 오래 지내며 미국인들의 기부 습관을 지켜보기도 했을 텐데, 한국과 차이점이 있는가.

“미국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채리티(비영리기관)에서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IRS(미 국세청)에서 세제 혜택도 많이 주니까 기부한 게 자랑스럽다. 하지만 한국에선 재단이 수익 사업을 하기도 어렵고, 철자 하나 고치는 것도 어렵다. 절차는 간소화하되 차라리 감시 기관을 통해 투명하게 잘한 재단에 대해 100% 세제 혜택을 받도록 하면 좋겠다.”

―자서전인 ‘코리안 탱크, 최경주’ 인세를 전액 기부하고, 매년 재단 운영비도 기부해오고 있다. 본인만의 기부 철학은 무엇인가.

“틈만 나면 하는 것이다. 요즘 (성적이 부진해) 틈이 많이 안 난다(웃음). 사람들은 예전부터 최경주는 돈이 있으니까 기부한다고 하는데, 돈이 있다고 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내년이면 최경주재단이 10년을 맞는다. 앞으로의 비전은 어떻게 되는가.

“작년 동계훈련 때 심리치료사가 아이들 심리를 봐주면서 내게도 ‘당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보라’고 하더라. 50, 10을 적었다. 50세가 되기 전에 PGA 투어 10승을 하고 싶다. 마음이 무겁다(웃음). 그 외 여럿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 한국 골프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는데, 우리나라에 훈련장이 없다. 최경주재단을 통해 ‘드림네스트(꿈의 둥지)’를 건설해 실내 돔에서 연습할 수 있는 다목적 연습장도 만들고 싶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꿈은 계속 꾸고 있다.”

최경주 이사장은 “우리 재단은 연초 세운 예산을 연말이면 통장잔액 0원이 되도록 전부 쓴다”며 “은행 잔고 이자 수익으로 재단을 꾸리라는 주변 조언도 있지만, 돈을 값지게 쓰려고 후원금은 무조건 꿈나무들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지면을 빌려, 재단 운영이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시는 모든 이사진께 감사하다, 한국 남자골프 중흥을 위해 기꺼이 대회를 유치해주신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님께 감사하다, 지금도 후원을 해주고 있는 후원자들께 감사하다”며 인사를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