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 차 직장인 A 씨(36)는 퇴근 후 집에 오면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본다. 업무와 관련한 카카오톡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도 휴대폰만 들여다보느냐며 아내에게 핀잔도 여러 번 들었다. 너무 힘들어 알림을 끄고 외면해보기도 했지만, 필요한 내용을 놓치면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있어 내려놓을 수도 없다. A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카톡 지옥'에 갇힌 기분이다.

근로시간 외에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곳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퇴근 후 울리는 '카톡' 메시지 알림은 적지 않은 직장인들에게 스트레스다. 근로자들이 업무시간이 끝나고도 초과 근무에 시달린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근엔 관련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퇴근 후에도 업무로 괴로운 직장인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는 9월 직장인 717명을 대상으로 '퇴근 후 카톡 금지법'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10명 중 8명에 해당하는 85.5%는 '퇴근 후 메신저로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업무 지시는 상사(68.4%), 동기 등 동료(17.1%), 협력사 및 고객사(12.2%)로부터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메신저 업무 연락에 대한 인식은 팀장 및 관리자 직급 직장인(62.2%)과 팀원 급 직장인(62.0%) 모두 부정적이었다.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의 필요성을 묻자 직장인 87.7%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선 직장인 74%가 '퇴근 후 업무 지시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고, 이 가운데 60%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했다. 그러나 퇴근 후 업무 연락이 '급한 업무 처리 때문'인 경우는 절반 미만(43.2%)이었고, '생각났을 때 시키는 게 편해서'라는 대답이 30.3%였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선 근로자들이 업무 시간이 아닐 때도 1주일 평균 11.3시간씩 스마트폰 등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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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시간 외 상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

프랑스는 지난 1월부터 근로자들의 '상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노동법에 규정하고 있다.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 근로시간 외 전화, 이메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업무 지시를 금지하는 '로그오프법'을 시행 중이다.

그동안 프랑스 노사는 '상시 접속' 근무 형태가 직원의 건강을 해치고 '주 35시간 근무제'를 뼈대로 한 프랑스 노동 시스템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관련 규정 마련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 하루 11시간 휴식 보장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조 대표인 미셸 드 라 포스는 "과도한 업무로 녹초가 돼 있을 때는 스마트폰을 통한 상사의 업무 지시에 '노'라고 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폴크스바겐, 다임러 등 독일 기업도 노사협약을 통해 퇴근 후 이메일이나 메신저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근로자의 휴식 시간에 업무상 연락을 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차단된다. 근로시간 종료 30분 이후 회사 스마트폰의 이메일 기능이 차단되고, 다음날 근로시간 30분 이전에 서버 기능이 재가동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LG유플러스, CJ그룹 등 근무시간 외에 카톡 등을 통한 업무지시를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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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규제, 실효성 있을까?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근로시간 외 업무 지시 금지 등이 포함된 '칼퇴근법'과 맥락을 같이 한다. 국회에서도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 등이 잇달아 법적인 규제 법안을 발의 중이다.

그러나 과연 업무 지시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는 아직 의문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에 나선 경우는 프랑스가 유일하고, 프랑스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노사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사업장에 일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어느 업종까지 법으로 정해두어야 하는지도 모호하기 때문에 법제화는 쉽지 않다.

최근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이용호 의원이 주최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도 '카톡 금지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전자적 전송 매체를 이용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지시를 내려선 안 된다고 규정할 뿐 구체적인 벌칙이 없다"며 "벌칙 없이 연결 차단권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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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부터 개선하고, 규제는 신중하게"

스마트폰이나 카카오톡을 없애버리지 않는 한, 퇴근 후 카톡 업무 지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당연하게도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카카오 측에 늦은 밤 대신 다음 날 보낼 수 있는 '예약 전송 기능'을 제안했지만 사실상 거절당했다. 카카오톡의 기능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행부터 바꾸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외 업무 지시를 제한하는 등 근로자 휴식권 보장 대책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퇴근 후에도 업무 지시를 내리는 관행 때문에 실질 근로시간이 늘고, 일·가정 양립이 어려워지는 것으로 봤다.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 직장인들이 꼽은 근무시간 외 업무 메신저의 단점도 '직장과 가정의 구분이 흐려진다(74.8%)'는 이유였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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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측은 "퇴근 후 업무 지시 관행 개선은 특정 기능의 도입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지금도 키워드 알림, 방해 금지 시간대 설정 등 카톡 기능으로 원치 않는 대화는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카카오는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환영한다"고 밝혔다.

고용부도 법을 만들어 강제하기보다 근무 혁신 문화를 일선 기업에 확산시키는 등 점진적 개선을 유도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전망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프랑스를 제외하곤 법으로 규제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면서 "업종별 상황이 다양하고,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 범위를 정하는 게 복잡한 문제라 법으로 모든 기업을 일괄 규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프랑스·독일 관련 법안의 공통점은 '호출 대기'라는 용어를 만들어 '대기 시간'과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시간은 사용자가 지정한 곳에 머물러야 하지만 호출대기는 어디든 자유롭게 갈수 있되 휴대전화를 켜놓아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양국 모두 원칙적으로 호출 대기는 휴식시간으로 보지만 실제 업무활동을 하면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며,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으로 이를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박지순 교수는 "법령으로는 최소한만 규정하고 기업의 사정에 따라 노사가 서면 합의로 대상과 범위, 보상조치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구체적인 휴식의 중단을 초래하는 업무 지시의 경우에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되, 퇴근 후나 출근 전 간단한 업무수행처럼 가벼운 휴식 중단은 인정하지 않는 유연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